국제개발협력 1세대! 세계 각국 현장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한 선배님을 모시고 ‘활동가의 삶,’ ‘활동가에게 필요한 마음자세’를 알아봅니다!
베트남 미소금융 사업 현장에서
<aside> 🍦 안녕하세요. 👐 김칩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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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정애입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세계사(세계 정치경제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로 식량 체제로 정치경제사를 이야기하죠. 제가 국제개발협력을 하며 경험하고 고민한 것을 인생 이모작으로 연결하여 대학에서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칩 뉴스레터 구독자분들보다 나이가 꽤 많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한 1세대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꽤 오래됐죠.
한반도평화에 대한 발제
<aside> 🍦 1980년대에 국제개발협력이라… 상상이 잘 가지 않는데요, 어떤 계기로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하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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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입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국제적인 핵 문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목도하며 반핵 운동, 평화 운동, 여성 운동 등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제3세계 출신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그들이 겪는 수많은 아픔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구호 단체에 들어갔어요. 보스턴 쪽에 있는 조그마한 구호 단체였는데, 인도적 지원에 뜻이 있어서 갔다기보다는 당시 그 단체가 수행하던 세계 각국의 민주화 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에 끌렸어요. 민족 해방,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제가 보탬이 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컸죠. 그것이 제 국제개발협력 활동의 시작입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함께)
<aside> 🍦 타국에서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하신 건데, 당시 교수님이 속하셨던 사회에서는 교수님을 어떻게 바라보았나요? ‘한국도 그다지 넉넉한 국가가 아닌데, 저 친구는 왜 여기서 운동을 하는 거지?’ 하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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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제가 한국 사회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좀 이상하게 보였을 것 같아요. 🙂 하지만 저는 미국에서 나름대로 한국과의 연대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내 소외계층이나 제 3세계를 지원을 함께 한 거죠. 그러니 오히려 그들에게 저는 ‘저 사람은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뭔가 하는 재밌는 사람이구나'로 비춰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그 미국 사회에서 정말 배울 게 많았습니다. 당시에도 미국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였지만 그 안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많았고요. 그래서 폭행당한 여성을 돕는 보호소, 성폭행 여성을 위한 핫라인 같은 활동을 했어요. 그런 도움이 필요해 보였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나만, 내 식구만, 내 나라만이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면서 ‘저들과 함께, 우리 가족도 함께, 우리나라도 함께’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탐구했죠. 그런 마음으로 처음 간 국제개발협력 현장이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이었습니다.
<aside> 🍦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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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 난민캠프에서 (199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