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싸라. 이 업계에서 가장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다. 간단한 옷가지와 절대 고장 나지 않을 노트북, 그리고 타인과 타국의 꿈으로 가득한 다 헤진 여권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가볍게 싸라. 곧 다시 떠나야 하니까. 평균 2년 정도의 파견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마치 팝업 식당을 열고 닫듯 삶을 정리한다. 전기를 끄고, 가스를 잠그고, 단골 바에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앞으로도 연락하자”는 말을 덧붙이고, 마지막 커피가 식기 전에 사라진다. 개발협력 파견자의 시스템이자 생존 방식이다.
한 나라에 2년쯤 있게 되면 그곳의 정치와 사회, 더위와 잦은 정전, 그리고 공손하면서도 영혼을 갉아먹는 특유의 광기를 헤쳐나가는 법을 배운다. 외교관, 기자, ‘좋은 일 하는 사람들’ - 동종업계의 현지 친구들도 생긴다. 그렇게 일을 하고, 보고서를 쓰고, 돈을 움직이며, 결국엔 떠난다.
하지만 마닐라는 지난 10년간 이어온 이 패턴을 깨버렸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내 기준으로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이 오랜 체류는 내가 섬세하게 구축해온 시스템에 서서히 과부하를 주기 시작했다. 잠깐 머물 요량으로 들어온 도시에 너무 오래 머물게 되면 어떤 기분인지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긴 하루 뒤 싱크대에 쌓인 접시처럼 관계가 쌓이고, 정리되지 못한 일과 관계들이 마음속에 웅웅거리며 내면의 전구 필라멘트가 타들어가기 직전처럼 진동한다. 그래서 새로 온 신입의 미숙함에 쉽게 화를 내고, 동료의 의미 없는 약어에 짜증을 내며, 네트워킹과 ‘협력’을 명목으로 한 커피 약속을 피하게 된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다면, 아마 당신도 이 ‘2년 주기 (혹은 더 짧거나, 길거나)’를 경험했을 것이다. 내게 2년은 일의 지름길을 익히고, 스스로가 대체 불가능하다고 최면을 걸며, 나태해지기 직전 떠나기에 딱 좋은 기간이었다. 현지에서의 인연도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급격히 친해지는 초창기를 지나 밥과 책, 영화를 함께하던 시기를 넘어가면, 새 비행기 티켓을 받으며 메시지는 뜸해진다. 관계의 유통기한은 비자 만료일과 같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효율적이라는 핑계 아래 관계에 들이는 에너지를 줄이려는 자기합리화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와 그 속의 고독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꽤 익숙한 역설이다. 스케줄은 꽉 차 있고, 카카오톡엔 읽지 못한 메시지가 쌓여 있으며, 여행과 모임 일정은 잘못된 테트리스처럼 달력을 빽빽이 채운다. 그런데도 공허함은 가시지 않는다. 세미나의 빈 옆자리일 수도 있고, 새벽 빗줄기가 창을 두드릴 때의 정적일 수도 있다. 혹은 친한 친구의 귀국일이 내일로 다가왔을 때의 울림일 수도 있다.
그 친구는 내가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하며 만난, 딱 세 명뿐인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 중 하나였다. 유교사상의 잔재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갑’이란 꽤 큰 의미를 가진다. 같은 농담이 통하고, 문화적 은유의 결이 닮아 있으며, 일에서 느끼는 피로의 무게도 비슷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그런데 내일, 그녀석의 계약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처음 사람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생각이 많아져 혼자 술 한잔 하며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 이 일 왜 하고 있지?’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이 일을 효율적이라서 선택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낯선 누군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기에 시작한 일이다. 내 경우, 그건 르완다 시골의 한 중학교 교실이었다. 세상 모두가 해답을 알고 있는데 왜 아무도 실천하지 않냐는 그 질문. 그 질문이 아직도 나를 이 자리에 붙잡아두고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밤새 발전기가 돌아가던 보건소의 기억, 영양실조 통계가 단순한 숫자 이상으로 다가오던 구청의 장면, 가정방문 중 웃음으로 모든 걸 이겨내려던 학부모의 얼굴. 우리는 ‘보다 숭고한 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무용품 발주표와 조달 일정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다. 마치 그 서류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그럴 수도.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