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업무능력 부족이란 명목으로 계약연장이 되지 않았을 때 그것은 시발점이 되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차라리 임신으로 인해 계약 연장이 어렵다고 했다면(현지에 혼자 파견되어 있으며 출장이 잦은 업무였다) 에라이 퉤 하고 뒤돌아 더러운 사회를 욕하며 아이 낳고 나서 다시 취직하면 되지 뭐 하고 털어버렸겠지만 업무능력 부족이라는 말은 비참하게도 나를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회사에서 임신 때문이라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이유를 만든 것이라고 모든 정황이 그렇다고 냉정하게 생각하려 해보아도 자신에게 쏟아내는 비난의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분풀이라도 하듯 1년 전 재계약을 하며 2차 인쇄를 했던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는 명함을 불태웠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남은 명함이 재가 되어 흩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국제개발협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아기를 낳았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없던 모성애도 생긴다던데 그렇지 않았다. 무너져버린 나는 ‘내’가 되지도 ‘엄마’가 되지도 못한 채 해야만 하는 일을 그저 기계처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해주지 않으면 혼자선 밥을 먹지도 똥을 싸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 이 작은 생명체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낯선 '엄마'라는 직책을 달고 본능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온종일 울어대는 아이를 마주 대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몸도 마음도 망가져 가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로 그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말하는 것이 싫었다.

"원래 애 낳으면 다 그러더라, 그래도 아이 보면 너무 좋지?"

개뼈다귀 같은 소리. 원래 그런 것이 어디 있나. 나는 산후우울증이 아니었다. 물론 호르몬으로 인한 영향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그런 것보단 나 자신을 잃어버린듯한 모습에 앞으로 쭉 이렇게 살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라는 사람은 엄마가 되면 안 됐었는데 아니야 그 전에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야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았어도 네가 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을까? 넌 사회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야. 네가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넌 딱 거기까지인 사람이었던 거야.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밑바닥을 쳤다.

나는 살기 위해 일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마침 아주 고맙게도 나를 필요로 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록 또 다른 단기 계약직이었지만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고 업무 환경 또한 좋았다. 갓난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회사와 함께 있었고 아이가 병원을 가야 할 때면 근무 시간도 조정해주었다. 물론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가정을 이루었기에 한국에서 정규직을 알아보는 것은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함으로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단기 계약직 또한 많이 고민해야만 했다. 나만 참으면 남편도, 아이도 함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를 위한답시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나는 너희들 때문이라고 탓하고 바보 같은 나를 더욱더 원망했을 것이다. 누구도 탓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100일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며 일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아이가 눈에 밟혀서 힘든 것이 아니라 새벽에 깨는 아이를 돌보며 출퇴근을 하는 것은 쉬는 시간 없이 24시간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행복했다. 전업주부가 되어 엄마로서 집안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일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지만 나라는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일이든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은가. 주부와 엄마도 때와 상황이 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책이라 본다면 주부와 엄마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업무를 사람에 따라 감당하기 힘들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힘들어한다고 어느 누가 비난 할 수 있을까. 물론 감당하기 힘들어도 해내야만 하는 일도 있듯이 엄마와 주부는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해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엄마보다는 ‘내’가 우선이 되기로 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명함을 불태운 향로. 내가 파견된 이곳은 여러 신을 믿고 있어, 때마다 신에게 제물을 받치기 위해 마을마다 설치된 무쇠 향로에 종이를 태우는 문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