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

누구나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주춤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발을 디디면 당연히 움직일 것 으로 생각한 층계가 움직이지 않으니 휘청거리며 난간을 잡게 된다. 백화점에서, 지하철역에서,  대형마트에서. 한국이라면 흔하디흔하게 만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움직이는 계단’이다. 그런 계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생소한 일이기에 에스컬레이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몸은 휘청인다.

하지만 이 지구 위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익숙하지 않은 곳도 아직 많다. 수년 전 미얀마로 처음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시내 중심에  대형 마트가 새로 생겨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미얀마에 새로 생긴 마트라니, 이건 못 참지. 나는 출장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망각한 채 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에야 미얀마에도 많은 마트가 생겼고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인프라들도 많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새로운  존재를 신기해했다.

좀처럼 마트 안으로 들어가는 행렬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원인은 바로 에스컬레이터에 있었다. 특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께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어려워하면서 언제 발을 올려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는 함께 있던 현지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지 않으면 주춤하던 나와 달리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멈추어 설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성격이 급한 몇몇 사람들은 계단이 빠르겠다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계단이 더 빠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그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지금까지 나에게 숱하게 찾아오고 있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불편하다, 특히 그곳이 개발 현장이라면. 무턱대고 동경하던 외국 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국제개발의 밝은 미래를 꿈꾸던 지난날들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철없이 느껴진다.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통도 많고, 경제 수준의 차이로만 규명할 수 없는 불편함도 크다. 더구나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식 편리함이 기본으로 자리 잡은 우리에게 개발 현장은 또 다른 현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우리가 기본이라고 생각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직은 너무 많다는 것을.

미얀마 사람들에게 이제껏 부재했던 에스컬레이터는 사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이고, 국뽕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지는 빠른 택배 인프라라도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목숨을 잃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꼭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없다고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고 해서 주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때는 ‘그곳’에 없는 것을 만들고 구축하는 것이 국제개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부재의 세상’을 올바로 인식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아마 현장에 있는 많은 활동가가 이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까 오만하게 생각해본다, 그 부재의 세상은 끝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