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졸업 후 개발 NGO에 입사하여 만난 팀장님은 커리어 우먼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도 30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팀장님은 업무적으로도 인정받았고,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 어린 신입 직원들을 대하셨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멋있던 분이셨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며 ‘그 팀장님’과 비슷한 사람이 개발 NGO 업계에 많음을 느꼈다. 개발 NGO 계에 이렇게 멋진 어른이 많다고? 그게 아니라 미혼 여성인, 나이가 꽉 찬, 노처녀 말이다. 나는 팀장님을 꽤 따랐고 존경했으나 고작 저렇게 기억한 것이다. “팀장님 나이가 많은데도 결혼을 안 하셨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일도 잘하고 결혼도 할 거야.”

아무리 능력이 있고 인성이 좋아도 일정 나이가 된 여성에 대한 기준은 결혼 여부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 속의 공주 옆에는 항상 왕자가 있었고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는 남자,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속에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인 미혼 여성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딘가 모자라 결혼을 ‘못’한 것처럼 그려졌다. (90년대의 이야기이다. 물론 지금도 나이만 늦춰졌을 뿐 아직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모습을 당연하게 보고 자란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여자는 30이 되기 전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마음 깊숙이 생각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어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냐 와는 별개의 문제로 오롯이 나의 문제였다.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했고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팀장님을 떠올렸다.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외 파견 근무자로 일하다 보면 30대 중반 금방 될 테고 40살이 훌쩍 지날 텐데 그때 결혼할 수 있을까? 나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할 거라 단정 지었다. 나는 구시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틀에 갇혀 결혼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팀장님처럼 노처녀가 되기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스스로 세상 진보적이고 자립심 강한 사람이라 자부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의 나는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고 30살이 넘은 ‘여자’가 겪을 온갖 편견들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거기다 개발 NGO에서 일하는 안정적이지도 않은 해외 파견자이지 않은가.

그렇게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이라 쓰고 세뇌라 부른다)으로 ‘여자’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남편 아침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으면서 결혼을 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물론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결혼을 한 것이지 단순히 위와 같은 이유로만 결혼한 것은 아니다. 아니다 싶은 사람이면 무슨 조건이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결혼하지 마세요…) 그러나 나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여자’이기 전에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리석게도 아침밥을 차리는 아내도, 직장에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도 되고자 했지만, 그것은 상충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침밥을 차리지 않는다. 커리어 우먼도 되지 못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나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노처녀가 뭔데? 혼자 살면 어때서? 최근 비혼과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예전보다 대중화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누군가는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알리고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가리고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무엇이 소중한지 돌아보고 살핀다. 지금 그 팀장님이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팀장님을 제대로 마주 대한다. 노처녀가 아닌 진짜 커리어 우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