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 (국제개발새발활동가)
국제개발 현장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사업 국가에 따라서는 잔뼈가 잔근육이 되기도 한다. 정작 나만 하여도 8년째 현장에서 같은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만약에 국가를 바꾸어서 새로운 곳으로 파견을 가라고 하면 ‘아, 응애에요’ 하고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남미는 남미대로. 그래도 같은 대륙 안에서는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도, ‘국제’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각기 다른 문화, 관습, 구조를 지닌 곳이 바로 현장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은 나의 잔뼈가 아직 물렁뼈이기 때문인 걸까.
그런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휴머니즘이다. 2018년 휴가를 내고 처음으로 라오스를 방문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기도 하였지만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겠지”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론리플래닛 – 라오스 편』 책 한 권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상공을 가르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책을 훑어보며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대략 계획을 세워봤다. 어디를 가도 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에 미래지향적으로 상황에 맞추어서 판단하고 계획을 조정하는 성격 – 그렇다, 나는 ENFP 타입이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재기 발랄한 활동가일지언정 자본주의의 거대한 장벽은 뛰어넘지 못했는데, 첫 번째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환전을 하지 못한 것이다. 공항에서 아주 조금 환전을 한 덕분에 숙소까지는 도착할 수 있었는데 당장 밥 먹을 돈조차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선택한 곳이 산골 마을 깊숙한 곳이라서 숙소에서도 환전해 주지 않았고 주위를 둘러봐도 은행조차 없는 곳이었다. 재기 발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활동가’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린 까닭에 여행을 와서도 돈도 없이 굶게 된 것이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길은 험하고 배는 고픈데 돈은 없고. 역시 라오스 와서도 내가 사는 꼬락서니는 똑같구나, 자책하며 하염없이 산골 마을을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둠칫 둠칫 대형 스피커에서 진동하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잔치다! 결혼식인지 생일잔치인지 아니면 장례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 멀리서 사람들이 잔치를 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고 역시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은 흥건하게 술이 올라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음악과 술에 취한 채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능글맞게 카메라를 꺼내 들고서는 그들의 모습을 뷰 파인더에 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 어서 나를 발견해라! 그리고 나를 초대해라!’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는 척을 하자 역시나 라오스 산골 마을의 ENFP 청년이 나타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생존 전략! 점심 해결!

유심조차 사지 않은 재기’불능’한 활동가는 21세기 문명의 이기 중 하나인 온라인 번역기조차 사용하지 못한 채 손짓 발짓 그리고 짧은 영어 단어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의 잔치는 결혼하기 전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이며 곧 신부가 되는 분 집안의 초청으로 개최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덕분에 밥 한 끼 얻어먹게 되었으니 신부에게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고 하자, 이미 피곤해서 집에 들어가 쉬고 있으니 그냥 여기서 우리와 같이 술이나 마시자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생존 전략! 음주 해결!
끊임없이 제공되는 라오비어와 함께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묻지 않고 함께 어울렸다. 사실 이런 잔치 문화는 내가 파견 나와 있는 베트남에서도 흔한 모습이기에 나는 이들이 나를 반겨줄 것을 확신했었다. 아니, 어디 베트남뿐일까?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도 비슷할 것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잘은 몰라도 아프리카도, 남미도 즐겁고 슬프고 – 사람이 필요한 일 앞에서는 모두 똑같지 않을까? 개별적인 특성을 뭉개버린 채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처럼만 느껴지던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말이 내가 하는 일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이 커다란 명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모인 날,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한 명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초대하며 그 마음을 나누는 ‘사람 사는 모습’. 우리는 그것을 신뢰라고 부른다.
물론 나의 이런 경험에는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젠더 권력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하고 이런 일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는 세상 속에서 그 신뢰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일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하니까. 현장에 오래 머물수록 지역 전문가가 되어간다는 느낌보다는 그 현장에만 갇혀버리게 된다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사실을 마주할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온라인상의 MBTI는 신뢰가 아니라 유사과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