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나는 파견국에서 현지인과 한국인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 같은 개발협력 판에서도 성범죄는 발생한다. 파견 동료 간, 상사와 부하 직원 간, 현지 직원과 파견 직원 간, 현지인과 파견 직원 간 어느 관계서 건 남, 여성별을 불문하고 발생한다. 어떤 범죄가 되었든 내 나라, 한국에서 피해를 당해도 힘든데 그것이 낯선 그리고 소위 말하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파견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다면 그 정신적 피해는 수치화할 수 없을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변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성범죄에 대한 문제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거나 부끄러운 문제라며 쉬쉬하여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개발도상국에는 여성 인권이 낮은 곳이 많아 성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파견국에서 꽤 많은 성범죄가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지난 2018년 미투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였을 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미투가 나왔다. 조용히 ‘지나가던’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내가 예민하게 느낀 건가” “내 잘못인가”라고 생각했던 조각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고 내가 예민한 것도 아니었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도 아니었고 활동가로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아니었다.
나는 유난히 성추행을 많이 겪었다. 캣 콜링은 일상이었고 언어적 추행, 신체 일부분을 쓰다듬는 행위, 입맞춤을 시도하는 것은 이후에 언급될 사건들에 비해 사소한 수준이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는 단체의 사업장에 있는 한국인이 전부인 시골 마을에 파견되었다. 그리고 사업장 내에 있는 숙소에 거주하였다. 경비가 항상 있었고 마을이 안전하다고 들었기에 나는 꽤 편안하게 지냈다. 그런데 숙소에서 샤워하고 있을 때 환기용으로 조그맣게 있던 창문으로 불법 촬영을 찍고 있던 반짝거리는 핸드폰 카메라를 보게 되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범인은 잡을 수 없었지만, 단체장은 정신적으로 지지가 되어 주셨고 경비를 강화하는 등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어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한동안 어느 곳에 있는 창문이든 쳐다볼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는 한낮 택시 안에서였다.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그때 택시 기사가 문 여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뒤를 돌아 뒷문을 열고선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내 가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열린 문으로 재빠르게 나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세 번째는 계획 없이 떠난 여행지에서였다. 밤늦은 시간 어렵게 잡은 여관에서(시골이라 호텔이 없었다.)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어 화장지를 받으러 리셉션에 갔다. 할아버지뻘이었던 여관 주인은 화장지를 건네주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늦은 시간 갈 곳도 없었거니와 그 자리에서 내가 놀라고 불쾌하다는 것을 표현하면 더 큰 화를 당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방으로 빠르게 올라왔고 그 이후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그 여관에서 나왔다.
이쯤 되면 내가 파견국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었을지 궁금할 수 있겠다. 비록 온몸이 덜덜 떨리도록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것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감사하게도 단체나 현지인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2차 가해를 가하지 않았다. 나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내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이겨 낼 수 있던 힘은 주변에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아무리 토닥여 봤자 주변에서 들쑤신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 한 가지 한국인 상사에게 당했던 것은 파견 단체에 말하지 못했고 그 일은 아직도 나에게 수치심과 후회를 남긴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에 허리를 잡아끈다던가 격려한다며 어깨를 토닥인다거나 악수를 하며 손을 쓰다듬었는데 그 당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다. 위력에 의한 것이며 그 정도가 강하거나 빈도가 잦지 않아 그냥 모른 척했었다. 현지인에게 당한 것보다 그 강도는 약하지만, 심리적 상처는 더 크게 다가왔다.
최근 5년 사이에 국제개발협력에서도 젠더 감수성이 화두가 되며 관련한 교육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대처와 사후 관리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이론 교육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가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평균적인 젠더 감수성을 높여야 하며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불법 촬영을 당했을 때는 숙소 창문에 안전 걸쇠와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주던 현지 직원이 있었고 무계획으로 갔던 낯선 여행지에선 밤늦게 여행지에 도착해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다는 나를 걱정하며 버스를 세워 문 열린 여관을 하나하나 알아 봐주던 버스 기사님이 계셨다. 안 좋은 일-좋은 일=0이니까 쌤쌤이지 그러니까 없던 일로~ 이럴 수는 없지만 낯설고 무서웠던 이곳을 이제는 내 고향이라고 느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으며 지내왔다. 그런 좋은 기억들로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출처: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pg/idcmetoo/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