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국제개발새발활동가)
- 조용석 (1985~ ,맥주를 마시다가)
오래전부터 NGO 활동을 하는 나는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긴 채 지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하나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부당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NGO가 10개 있는 것보다는 거대한 기업 하나가 멀쩡히 있는 노동법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도 이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이런 명제는 한국에서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데, 특히 저렴한 인건비를 이유로 해외로 진출한 기업의 경우에는 이런 부분에는 소극적일 때가 많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 자본가는 온갖 술수를 써서 현지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법을 배우고, 이에 맞서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하고 시위하는 법을 배우게 되니 자본가도 노동자도 서로 이득이라는 슬픈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런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할 때면 개발 협력이고 국뽕이고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사업을 발굴하고 지역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온종일 뛰어다녀도 막 돼먹은 글로벌 기업이 끼치는 해악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잠식해버릴 만큼 너무 거대하다. 그런 까닭에 기업의 책임감 있는 사회 공헌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활동가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미덥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은 내가 목격한 상처가 너무 많은 까닭일까. 묵묵히 내 할 일을 이어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국적에 상관없이 국제 시민으로서 그들과 함께 연대하며 아픔을 나누고는 있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기업에는 다니던 친구는 일껏 휴가를 내고 베트남으로 여행을 왔지만 하필이면 친구라고는 NGO에서 일하는 나 같은 것밖에 없어서, 우리는 여행자 거리 길바닥에서 갓 구운 문어와 새우 꼬치를 목욕탕 의자 위에 두고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병을 기울였다. 마침 여행 3일 차에 접어든 친구는 이제 슬슬 베트남 음식이 물리는지 아니면 이런 대화 주제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는지 대뜸 한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한국 사람이라면 역시 한식이지. 소주 좀 사 올까?” 베트남에 오면 동남아시아의 진미를 마음껏 즐길 줄 알았던 그에게 하필이면 친구라고는 나 같은 것밖에 없어서, 해외여행까지 왔는데 길바닥에서 소주나 마시게 되어버렸다.
“근데 어디서 마셔? 여기? 여기 소주 팔아? 다른 가게에서 사 온다고? 그래도 돼? 외부음식 반입 가능해? 그거 민폐 아냐?”
나는 아직도 그 기준을 잘 모르겠다. 한국이었으면 분명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지만, 정작 다른 나라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 적어도 그 장소는 소주든 메주든 와인-마리아주든 외부 음식을 반입해도 문제가 없는 곳이었고, 이건 대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소주 못 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하는 말이지만 (물론 그건 사실이다) 단순히 문화나 인식의 차이로 구분 짓기에는 모호한 기준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폐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고 섣불리 말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그런 만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폐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 내가 보고 배워서 알고 있는 민폐의 기준, 아니면 이곳에서는 충분히 통용되는 마이페이스? 단순히 소주 하나 마시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나아가서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우리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시각에도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열망을 위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다.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한국 기업도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번 쿠데타 이전부터 미얀마 군부와 손을 잡고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던 대기업들도 있다. 민폐의 축에도 못 끼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착실하게 군부와 카르텔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왜 미처 이 거대한 해악을 발견하고 살펴보지 못했을까. 혹시 그게 한국에서는 민폐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