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국제개발협력 판에 인턴으로 처음 발을 들였을 땐 최저임금을 받았다. 그다음엔 일은 직원처럼, 월급은 봉사단원 급으로 받으며 해외 파견이 되었더란다. 이 업계에서 일하는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돈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졌고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기에 월급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던 것뿐이지 돈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는(지금 남편이 된 사람) 내가 돈 욕심이 없는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한다. 아무리 나 돈 좋아한다, 착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해도 내가 이 개발협력 일을 하는 한 계속 저리 생각할 듯하다. 국제개발협력의 'ㄱ'자도 모르는 사람에겐 나는 그저 ‘봉사활동’을 하는 ‘착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20대 시절을 보냈다. 아주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았지만 나 혼자 먹고살 만했기에 괜찮았다. 아마 내가 오랫동안 한국에 있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이었다면 작고 귀엽지 못한 코딱지만 한 자취방에서 생활하며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용에 나의 소중한 월급이 순식간에 사라져 흩날려버렸을 테니까. 가보고, 해보고, 먹어봐야 할 것도 많고 적금에 주식에 재테크까지 신경 쓰려면 적은 월급은 성에 차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철저히 한국 사회와 단절시켰고 내 월급보다 더 적은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하는 일이 비해 내 월급이 많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돈을 위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돈이 없어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살고 싶진 않다. 혼자선 그렇다 쳐도 결혼한다면? 아, 난 동종업계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 사기업에 다니며 안정적으로 돈 벌면서 내 일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지’

바보 같게도 내가 이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일은 돈을 벌 수 없는 일. 내 일의 가치는 높게 사지만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노동력에 대해 마땅히 지급돼야 할 대가를 받지 못함에도 부당함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바보 같던 어린 내가 원하는 바 대로 ‘돈을 버는 사람’과 만나 결혼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그렇게 있었다면 결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아둔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에게 아주 당당하게 나는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한다. 하지만 돈은 못 벌기 때문에 모아둔 돈이 없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다. 했고 나보다 그가 더 바보였던 건지 그는 그런 나와 결혼을 하였다.

아무튼 내 철두철미한 계획대로 ‘돈 버는 사람’과 만나 통장은 늘 두둑하게 채워졌고 그는 내 일을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해외파견의 특성상 보통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한 국가에 3년 이상 파견하지 않는데 현지에서 가정을 이룬 나는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하는 공간적 제약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그에게 ‘내가 먹여 살릴 테니 나만 믿고 따라와!’라며 가족을 이끌고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조건에서 그만한 월급을 받을 수 없기에 섣부르게 내 꿈을 좇을 수 없었다. 일단 현재의 개발협력 업계의 상황을 봤을 때 크고 아름다운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NGO 실무자로서는 불가능하다. 또한 학위가 뒷받침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고스펙이 넘쳐나는 개발협력 업계에서 석사는 기본이고 박사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현실이다. 물론 모든 석박사가 크고 아름다운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기본으로 뒷받침되어 줘야 연봉이 커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아내를 따라 나온 남편의 케이스를 7년 동안 3번 보았는데 그녀들은 모두 석박사였고 NGO 실무자도 아니었다. 나는 지방국립대를 겨우 졸업했으며 별다른 뛰어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NGO에서 현장을 뛰는 실무자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돈을 벌 수 없었다. 사명감과 이 일에 대한 가치를 월급으로 치환하며 살아야 했다. 이제 나는 돈을 많이 벌면서 개발협력을 하고 싶다. 내 노동력에 그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학위가 없어도, 현장 실무자여도 말이다. 나는 꿈꾼다. 언젠가 그에게 일 그만두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할 그 날을. 그곳이 어느 나라가 되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