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국제개발새발활동가)

문예창작과 졸업 이후 전공 연계 활동의 일환으로써 나는 악플을 다는 취미를 갖고 있다.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소셜미디어 등에서 여과 없이 공유되는 혐오와 차별의 게시물에 뛰어들어서 악플로 대응하는 나의 취미 활동은 사실 고상할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이 봄바람 휘날리며 차단 엔딩으로 끝나버리는 이 활동에는 그 어떤 성과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맘 놓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꼴은 차마 볼 수 없기에 너 하나 죽이고 여러 사람 살린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향한’ 악플을 단다. 그들까지 품지 못하는 속 좁은 나의 한계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악플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담지는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이에나처럼 악플 달 곳이 없나 어슬렁거리던 찰나에 국제개발 관련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글을 하나 발견했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활동이 가진 커다란 의미에 비해 NGO 활동가가 마주하는 열약한 현실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누구 하나 피해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하지만, 악플 달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여기에라도 썰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쉽게 ‘NGO는 왜 이리 월급이 적죠?’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현실에 대해서.

예술과 NGO의 공통점이라면 단연 돈을 많이 못 번다는 점이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돈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억압 기제이다. 그런 까닭에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언제나 낮은 대가를 치러 가면서 현실을 버텨내고 있고, 이런 모습은 NGO 업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 높은 대가와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면 “예술을 하는 사람이 (=좋은 일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돈을 밝히냐?”,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 (=봉사)를 해야지!”라고 ‘후려치기’를 당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혹시 이 모든 것은 무산계급이 주도하여 혁명의 물보라를 일으켜 Da-da-da-da, da-da-da-da-da-da 라는 수작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억압 기제 때문에 돈을 더 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으니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니까 적게 받는 건 당연해’, ‘이런 속물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나빠.’ 하며 지금의 현실을 뒷세대의 현실로 미뤄버린다.

소설가 장강명은 2015년 장편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발표하여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는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당시 그가 남긴 수상 소감을 나는 매우 좋아하는데, 당장에 예술을 하고 또 NGO 활동을 하는 우리의 가슴에 한 번은 와닿아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하기에 감히 몇 문장을 발췌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 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 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을 쓰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각각 제가 ‘소설 쓰기’라는 전쟁을 치르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전장(戰場)이기도 합니다. 가끔 저는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이 진짜 중요하고 태평양 전선은 원자폭탄 한 방이면 끝이다’라는 식으로 이 세 번째 전장을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그 전선의 참혹함에 겁에 질려서일 것입니다. 싸움터의 기후는 낯설고, 월급쟁이를 하다 입대한 저는 변변한 전투 기술도 없습니다. 나이 든 육군 보병, 계급은 하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 번째 전장이야말로 진정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폭력이 충만합니다. 외교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첫 번째, 두 번째 전장과 달리 이곳은 현실의 싸움터라고 느낍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원조를 받으며 시장 밖에서 피난을 다니지 않고, 시장 안에서 싸우며 시장가치를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두 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커뮤니티에 고민을 남긴 사람의 글에 NGO의 현실을 타개할 당장의 방법을 내가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글을 쓰신 분이 그런 고민을 하는 본인을 자책하지 않길 바랐다.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고, 그런 고민 속에서 각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 현실에 타협하는 것도 타협하지 못하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살기 가득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악플러는 그 날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차분하게 긴 댓글을 남겨드렸다. 지금까지 악플을 달았던 나의 모든 과오가 이 따뜻한 글 하나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이 사람은 두 달이 넘도록 긴 글에 고맙다는 댓글은커녕 커뮤니티에 방문도 안 하고 있으니 오늘도 나는 독기 바짝 오른 악플러로 살아간다, 라는 건 농담이고 그분에게나 내 댓글을 보신 분들에게나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