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국제개발새발활동가)
실패한 사랑의 숫자만큼 사람에게 다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무너진 사랑의 기억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선 다정함의 화신 ‘호모 카인네스’ …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못된 생각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사랑이 아직 남은 모양이다. 단순 연애 관계를 떠나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감정을 키워가면서 이윽고 사랑의 이름을 붙이는 일은 너무나 숭고한 과정이지만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의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만큼이나 실패한 사랑은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한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나는 무엇이든 해주려고 했다. 잘해주고 싶었다. 음습하게 3분단 넷째 줄에서 어깨 너머로 그 사람을 훔쳐보다가 일기장에 오늘 그 사람이 몇 번 웃었는지 적어두는 그런 짝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 ‘내가 당신에게 이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때로는 내가 준 만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잘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래?” 라는 말만큼 가슴 아픈 기억은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스스로 반문하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울며 잠들기도 했다.
개발 협력 사업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과정은 무엇일까?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는 것, 정확하게 문제를 분석하는 것, 이해관계자의 특성과 요구를 파악하는 것, 뚜렷하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구축하는 것, 모든 활동과 그에 대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는 것. 당연히 무엇 하나 빠짐없이 중요하다. 개발 협력 사업 관련 그 어떤 이론 서적을 펼쳐보아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 무게를 모르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사업을 설계하는 동안에 자꾸 쓰라린 지난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건 아무래도 이 과정이 짝사랑의 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사업은 정말로 충분한 사전 조사와 정확한 문제 분석, 명확한 목표 그리고 논리적인 사업 구조만 있으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가? 아무리 완벽한 사업을 만들었어도 사업 참여자가 “잘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도 울면서 잠들 것인가?

물론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협력 사업 추진 간에는 크로스 커팅 이슈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한 고려도 항상 동반된다. 좋은 사업이란 잘 쓰인 사업계획서 몇 장과 책상머리 앞에서 만들어진 논리 구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 앞에서는 그 어떤 이론도 왕도도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초선조사에 성실히 응했던 사람이 지난밤 꿈자리가 안 좋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기도 하고, 교육 간에 한 그룹으로 편성한 사람들끼리 괜히 개인사를 건드리더니 불화가 조장되기도 하고, 새로 온 직원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동향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기도 한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다가가고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당신과 당신의 가족, 당신의 마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도 한 번 상한 마음은 돌리기가 어렵다. 국제 개발 협력 사업 실패 사례집을 만든다면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잡지 못해서 생긴 상처가 가장 많지 않을까. 사업 참여자는 모두 선한 동기를 갖고 있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설계된 사업 내용대로 활동하여 이윽고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만큼 허무맹랑한 소설은 없다.
성과주의에 함몰되어있는 우리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너무나 무겁게 다가오지만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서 실패만큼 당연한 결과는 없다. 인간관계에 실패했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제껏 자라오면서 숱하게 사랑에 실패했듯이, 사업 참여자 마음을 대하는 일에도 성공하지 못할 때도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은 사춘기 때 이미 배운 명제다, 그리고 우리 실연을 통해서 조금 더 사랑을 배웠고 성숙해졌다. 상처받은 마음이 다스리지 못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해지고 그것은 반드시 사람에게 다정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개발 협력 사업이라고 그게 다를까. 잊지 말자, 실패한 사랑의 숫자만큼 사람에게 다정해진다. 우리는 더 다정해질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I’m on the Next Level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