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탱커레이
한국에 들어와 지내고 있는 요즘, 길을 걸어가다 학교를 지나가게 되면 담장 너머의 안을 들여다본다. 푸릇푸릇한 잔디가 쫙 깔린 너른 운동장과 축구 골대, 깨끗하고 잘 정비된 건물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푸른 잔디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뛰어놀기 참 좋겠다 싶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지나가겠지……?) 푹신한 잔디가 깔린 너른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웃고 뛰놀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럼과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부끄러움을 모른 척해보려 해도 자꾸만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콕콕 찌른다. 그 부끄러움은 잔디 운동장을 볼 때마다, 아마도 죽기 전까지 얼굴을 내비치며 콕콕 찌를 것이다. 부끄럽고 한심스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꼭꼭 숨겨두었던 그 날의 일. 오늘 처음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말하고 나면 이 부끄러움이 조금은 사그라들까? 아니다 사그라지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이 글을 쓴 것 같잖아.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나 자신을 너무 구박해서도 안 되지만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은 절대 잊지 말고 되새겨서 두 번은 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지.
그 부끄러움의 시작은 단기 봉사팀에서 시작되었다. 감히 100%일 것이라 확신하는데 NGO에서 해외 파견된 모든 인력은 한 번쯤은 단기 봉사팀 업무를 진행해보았을 것이다. 단기 봉사팀 업무란 한 팀당 짧게는 4박 5일에서 길게는 2주까지 여름과 겨울 휴가철에 단기로 현지에 봉사활동을 오는 대학, 기업팀을 말하는 것으로, 이 팀의 활동을 계획, 진행, 인솔하는 업무이다. 이 단기봉사팀 업무는 기존에 추진하던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추가로 해야 하는 일이라 이 시즌에는 정말 정신이 없고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하던 일 그대로 진행해야 하고 단기업무팀 업무는 이 시즌에 몰려 있기에 여름, 겨울 휴가철이 다가오면 좀비 상태로 일하게 되었다. 아무튼, 나도 이 단기봉사팀을 수없이 맡아왔는데 그중에 내 부끄러움이 꼭꼭 숨어 있다.
내 안에 숨겨두었던 그 단기봉사팀은 시골 초등학교에 운동장, 화장실, 도서실을 구축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팀이 현지에 도착해 활동 기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하고 완공식까지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봉사팀이 들어오기 전에 공사에 대한 모든 준비를 끝마치기 위해 기본 부지 공사 일정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일단 학교 측에서 운동장 부지라고 보여준 곳은 수풀과 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공터였고 기존에 있던 화장실은 화장실이라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저 벽을 세워만 놓았을 뿐인 밖과 안을 구분해 놓은 시멘트 구조물이었다. 학교에서는 그 공터에 잔디를 깔아 아이들이 축구 경기를 하기 좋은 운동장을 만들어 주길 원했었다. 건축에 대해 기본 상식조차 없는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도 몰라 하나하나 물어봐야 했다. 공사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예산을 분배해야 하니 어디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야 합리적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우선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운동장의 경우 수풀과 쓰레기만 치우고 그 위에 잔디를 심는 것이 아니라 땅을 다 갈아엎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땅을 갈아엎어서 새로운 모래로 덮고 땅을 일정하고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평평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 후에 그 위에 잔디를 올리는 것이었다. 여러 업체를 조사하고 알아봐야 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론 지금 하는 말은 다 변명이다. 일정이 빠듯했었다느니,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현지 직원과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현지 직원의 의견도 들었어야 했다 느니, 이미 정해진 업체가 있었다 느니 하는 변명 말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내게 주어진 한정된 정보만으로 예산을 책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장에 잔디까지 까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모래만 깔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것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충분하다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려 완성한 예산안으로 운동장, 화장실, 도서실의 규모가 결정되었다. 본부에서는 현지에 있는 실무자인 내가 만든 예산안을 컨펌하였고 현지인 실무자와 현지인 지부장님 역시 본부에서 컨펌시켜준 내가 만든 예산안에 맞추어 일을 진행했다. 일은 착착 진행되었고 정신없이 단기 봉사팀 활동을 마무리한 뒤 집행된 금액을 정산하였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잔디를 깔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이 남는 것이 아닌가. 자책에 자책을 했지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적어 내린 숫자 몇 번으로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잔디가 사라진 것이다. 결과 보고를 위해 다시 찾은 초등학교엔 전과 다르게 잘 다져진 운동장과 축구 골대, 화장실, 도서실이 있었고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정말 고맙다 인사하셨지만 나는 너무나 미안해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래보단 잔디가 더 좋았을 텐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본부도, 현지 직원도 모두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했지만 나는 너무나 찝찝했다. 이제라도 말해서 남은 금액으로 잔디를 깔아주자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잔디의 잔도 말 꺼내지 못했다. ‘그래, 모래 운동장도 좋지’ 하며 내 실수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나를 보호했다. 그렇게 잘 감추었다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부끄러움은 숨겨지지 못한 채 잔디운동장만 보면 삐쭉 얼굴을 내민다.
현지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면 본부도 현지인 직원도 할 수 없는 현지에 파견된 한국인 실무자만이 오롯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지의 상황과 욕구를 세심히 파악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한국과 현지를 잇는 일. 내 생각, 본부의 생각이 아닌 현지의 상황에 맞게 객관화하여 발로 뛰어 시장조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 그건 백번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당연하다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간과했다. 타성에 젖어 원래 이렇게 진행하던 일이니까 라고 지나가는 순간부터 부끄러움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처음 국제개발협력에 발을 들였던 그 열정을 지금까지 유지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수시로 비쭉 내미는 내 안의 부끄러움을 마주 대한다. 아, 너 거기 있었구나^^;; 내가 널 어떻게 잊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