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용석(국제개발새발활동가)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십만 명의 동의를 얻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정식으로 회부되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청원 동의를 독려하고자 하였던 이번 원고는 열흘 정도 빠르게 십만 동의를 달성하는 쾌거 덕분에 다시 쓰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조속한 소위 논의를 통해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길 바란다.

한창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계속되는 서류 탈락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가던 있던 나는 끝끝내 차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 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올리신 채용 공고 보고 문의 드리고자 연락 드렸습니다!! 지원 자격 조건을 보니까 4년제 대학교 졸업으로 되어있던데, 그러면 고졸이나 전문대 졸업한 사람은 지원하지 못하나요!?!?!” 전화를 받은 채용 담당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직면한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아뇨… 괜찮을 것 같은데요…” 라며 말을 흐렸다. 그럴 거면 도대체 왜 ‘4년제 졸’이 지원 조건으로 적었단 말인가. 그날로 나는 세상에 대한 불신까지 추가 적립하였다.

7년째 근무하고 있는 지금의 기관을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국제개발협력 업계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아직까지 나는 다른 기관의 채용 공고를 유심히 살펴본다. (진짜입니다, 대표님...) 코로나 이후로 우리 생활 어느 부분 하나 바뀌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있어서 인력 파견에 어려움이 생긴 것은 큰 장벽 중 하나다. 봄날의 제비마냥 매년 3월이면 찾아오던 KCOC 봉사단원도 사라졌고, 국가별로 상이한 입국 절차와 자가격리 지침으로 인해서 파견과 출장은 더는 연례행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기관은 파견의 기회가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좋은 인원을 선발하고자 인재 채용에 혈안을 올린다. 좋은 인재를 뽑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취업 준비생 시절, 나는 파견 국가, 수행 사업에 상관없이 신입을 모집한다는 채용 공고를 보면 무조건 이력서를 넣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당시에는 페이스북 대나무숲은커녕 잡플래닛 같은 취업 정보 사이트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채용 조건에 해당하기만 한다면 일단 지원하고 봤다. 설령 블랙 기업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여도 이 모든 것은 블랙 맘바가 만들어낸 환각 퀘스트라고 생각하고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던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원은 고사하고 진입조차 할 수 없는 때가 많았는데, 바로 ‘4년대 졸’이라는 지원 조건 때문이었다. 우대조건도 아니고, 지원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4년대 졸’이었다. 매번 그러한 채용 공고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화가 치밀었고, 그런 까닭에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전화 문의까지 했던 것이다.

청년 인턴, KOICA YP 등 정부 지원으로 이뤄지는 채용 공고에는 지침에 따라서 학력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차별금지법 청원 십만 명이 돌파한 지금 이 순간에도 채용 공고를 보면 ‘4년대 졸업’을 지원 조건으로 명시하는 기관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이들은 버젓이 세계 시민을 양성하고 있으며 인권 기반의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다면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차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차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겠다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뒤돌아봐야 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래야만 하는 것. 누구든 언제나 차별을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 우리 모두 이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에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학력에만 국한되어있지 않고 성별, 성 정체성, 장애,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성 지향성,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을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내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아직 얼마나 적립되어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국제개발협력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김치앤칩스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 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 역시 저지르고 있는 차별에 대해서 한 번쯤 돌아보길 바란다.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