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농익은 10월, 나는 태어났다.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밤, 누구에게도 부탁받지 않았지만 나의 사계절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을 한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몹시 추운 계절이었다면, 아니면 염소 뿔도 녹이는 뜨거운 시간에 첫울음을 터트렸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 - 당장 풍족할 지어도 당장 혹독한 겨울을 생각해야 하는 가을에 태어난 나는 어리광조차 부릴 수 없는 시간 한복판에 놓여졌다. 사계절의 시작이 반복되는 가을마다 나는 고민한다. 왜 우리는 배부를 때 배고픈 것을 생각해야 하는 걸까.
45억 년 전 지구는 무슨 계절에 태어났을까. 수 없는 소행성 충돌과 몇 번의 빙하기 그리고 다섯 번의 대량 멸종을 겪은 지구의 역사 위에 한 페이지는커녕 한 줄에 마침표도 채 찍지 못한 인류가 갖기에는 다소 오만한 생각일지 모른다. 대지 위에 두 발을 이제 막 디딘 우리가 지구의 계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주의 관점에서는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싶다가도, 우주라는 단어가 주는 광활한 공간감 앞에서 나는 또 고민한다. 1985년 10월의 가을밤, 930억 광년의 크기로 순식간에 펼쳐진 나의 우주 안에서 지구의 사계절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국제개발협력 뉴스레터 김치앤칩스 원고를 쓴지 딱 1년이 되었다. 8월에 태어난 김치앤칩스가 태양의 한 바퀴를 돌고 온 지금, 우리는 어떤 계절로 돌아온 것일까? 평소 술에 취해 내뱉는 말장난처럼 가볍게 지나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눈을 뜬 이후로 온 세상은 가을뿐이었다. ‘지속가능성’을 타투로 새겨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은 – 아마도 갈비뼈 근처가 좋을 것이다, 이브의 탄생처럼 - 망측한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저 단어도 가을이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으리라. “당장 배가 부르다고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고민한 사람의 외침으로.

1975년 미국 MIT 대학 연구진은 급속한 경제 성장은 21세기 중반 사회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 당시의 지구는 과실들이 풍요롭게 익어가던 –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Yale Journal of Industrial Ecology에 실린 글로벌기업 KPMG의 지속가능성 및 동적 시스템 분석 책임자인 Gaya Herrington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46년 전의 연구 결과를 아주 착실히 따르고 있다고 밝혀졌다. 인구, 출산율, 사망률, 산업 생산량, 식량 생산, 서비스, 재생 불가 자원, 환경오염, 복지,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총 10개의 변수에 의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40년부터 이 사회는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가을날 어디선가 떨어진 과실 하나가 이듬해 싹으로 돋아나듯이 기술 혁신과 보건, 교육의 투자가 이어진다면 미래는 열려 있다는 결론도 제시하였다.
가을 뒤에는 겨울이 온다, 하지만 겨울 뒤에는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위기감 속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은 이어지고 김치앤칩스는 탄생했다. 곧 다가오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부디 모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김치앤칩스 개간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