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남의 말에 쉽게 현혹되었다. 자신만의 줏대를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도 누군가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또 그 사람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그래,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는구나. 비록 나는 황희 정승처럼 청빈하지는 않고 그냥 천박하고 빈곤할 따름이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사정에 쉽게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귀가 얇다고 했다. 그래, 네 말도 맞는구나.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들어도 사람들의 말에 경청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면 내 귀가 얇든 내 지갑이 얇아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말을 가만히 듣던 또 한 명의 귀 얇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건 귀가 얇은 게 아니라 마음이 얇은 거라고. 귀가 얇은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 뿐이라면 마음이 얇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런 마음은 상대방에게 커다란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 친구야말로 진정으로 마음이 얇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최근 막을 내렸다.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어찌어찌 시작해서 저찌저찌 끝난 것이 꼭 내 인생 같았다. 한국이라는 사회에 온갖 염증을 느끼던 나 역시도 안산 선수의 활시위와 김연경 선수의 스파이크에 술잔을 몇 번이나 들어 올렸는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 역시 마음이 한결 더 얇아졌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긴다고 하여도 자기 인생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서 기쁘지도 않고 메달 따봤자 연금 가져가는 건 그 선수일 뿐인데 왜 기뻐해야 하며 해설위원이 응원하는 건 결국 자기 밥그릇 지키기 아니냐는 글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얼마나 사는 게 힘들고 치열하면 이런 생각을 하냐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수준의 공감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포용하고 싶지는 않다. 공감은 그 사람의 처지를 내 마음에 투영하며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것이지, 억지로 이유를 찾아주면서 마음을 끼워 맞추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내가 본 것은 올림픽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의 넋두리였지만, 내 마음에는 세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본인은 수능도 잘 보고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왜 나보다 스펙이 안 좋은 사람이 아파트를 샀는지, 본인은 몇 년째 고시 준비 중인데 취업 활동도 없는 나보다 어린 여자가 어떻게 공직자가 되는지, 혜택을 누린 것은 기성세대인데 가만히 있던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며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저 맹목적인 이해에 길들여진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차별과 혐오의 발언에 자꾸 귀 기울여주면 그것이 존중 받아 마땅한 의견이라도 되는 줄 아는 그들은 공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두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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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인류 문명의 시작을 15,000년 전 부러진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퇴골은 엉덩이와 무릎을 연결하는 뼈인데, 여기가 부러지면 움직일 수가 없고 최소 6주의 휴식이 필요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 뼈가 부러졌다면 위험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포식자의 사냥감이 되었겠지만, 누군가의 이 기다란 뼈가 다시 붙는 동안 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서 치료해준 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사람의 뼈가 부러진 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당장 나도 먹고살기 힘들어서 외면하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것은 문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명을 일구어가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개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이 땅 위의 빈곤을 종식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감싸는 일로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얇으면 얇을수록 좀 더 넓게 좀 더 많이 감쌀 수 있다. 마치 15,000년 전 누군가의 넓적다리뼈를 보살펴주던 사람들의 손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