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지 이제 1년 6개월이 되어간다.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당시 살고 있던 집 계약이 만료되어서 새 거주지를 구했어야만 했는데, 가뜩이나 듣도 보도 못 한 코로나 19 때문에 외지인을 경계하던 동네 사람들은 보도 듣도 못 한 외국인인 나에게 쉽사리 보금자리를 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차라리 사업을 수행하고 있던 마을로 갔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 텐데, 지역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 나는 정해진 지역에서만 거주지 등록을 했어야만 했다. 낯선 역병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이사를 오던 날 싸늘하게 바라보던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다짐했다. 꼭 동네 인싸가 돼야지, 꼭 동네 인싸가 돼서 동네 짱을 먹을 거야.

인근 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점심시간에만 밥집을 운영하시는 아주머니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돈을 더 받기 시작하셨다. 낚시한 고기를 우리 집 앞마당에서 구워먹다가 나한테 걸린 옆집 동생은 얼마 전 딸 돌잔치에 날 초대하였다. 건너편 집 할아버지가 동네 어귀에서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가시길래 오토바이 태워 드리고는 “5만원!” 하고 외치니까 방금 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등싸대기를 때리셨다. 모두에게 하나 하나 소중한 추억이 있고 그것들을 전부 소개하자면 아마 지면이 남아나질 않겠지만, 오늘은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일깨워준 반미(Bánh Mì: 베트남식 샌드위치) 가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토바이로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출근길이지만 그래도 아침은 꼭 챙겨먹는다. 그러기에는 베트남에서 반미만한 음식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새로 이사 온 동네에는 김밥천국처럼 흔한 반미 가게 하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어 달을 스팸 잃은 추석선물세트 마냥 반미 없는 ‘굿모닝 비엣남’을 보내야만 했는데, 우연히 사무실 근처 작은 골목에서 작은 카트 하나를 집 앞에 내어두고 반미를 파는 곳을 찾아내고 말았다. 갓 구운 바삭한 바게트에 오이, 고수, 무절임 그리고 베트남 풍 고기 페이스트(Pate)와 햄을 듬뿍 넣은 반미는 600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는 맛이라고 주접을 떨고 싶지만, 베트남에 온 사람들은 대체로 아무 반미나 먹어도 맛있다고 하니 억울한 이 내 마음을 토로할 길이 없다. 이 집 반미는 정말로 맛있단 말이다…

매일 출근하면서 서로 얼굴을 익혀가는 만큼 주고 받는 말들도 조금씩 길어졌다. “반미 1개” 라는 짧은 말에 “짜오 쭈! (Chào chú: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붙이니, “600원”이란 짧은 대답이 “자주 보네? 여기 살아?”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덜그럭거리며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이윽고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여기서 무슨 일을 해? 어디 살아?” 라고 하면서 살갑게 나를 대해주신다. 매일 아침마다 3분 정도 주고 받은 짧은 대화였지만 주인 내외 분들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반겨 주셨다. 때때로 가게에 다른 손님이 있으면 나를 소개하며 “얘 한국 사람이야!” 라고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워 하셨다. 소개 당하는 나로서는 매일 겪으면서도 매번 어리둥절한 일이지만, 가게에 있던 다른 분들은 언제나 신기해 하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신다. 여전히 서투른 베트남어지만 그래도 나의 대답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든 베트남어를 해보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주인 내외 분들은 좋아하셨다. 그것이 이 동네에서 사는 주민으로서 내가 보여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네 짱이 될 수 있는 첫 걸음이기도 했다)

출근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우의를 입을까 했지만 사무실까지 금방 도착하니 빗속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그 와중에도 반미 사는 것은 잊지 않고 가게에 들렀는데 사장님은 비가 많이 오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벽 한 켠에 서툰 글씨로 적혀 있는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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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란 나머지 깜짝 소리를 지르자 사장은 아마도 오랫동안 연습해왔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못 했던 말을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한국에서 온 걸 알았으니 이런 인사말 하나 정도는 배워야지, 그게 작은 예의 아니겠느냐 라고 하시면서 쑥스럽게 반미를 포장해주셨다. 서툴러도 상대방을 위해 말 한 마디라도 건네려고 하는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갈 때, 새로운 나라로 파견을 갈 때 우리는 외지인으로서 타인의 세계로 울타리를 넘어간다. 우리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있든지 간에 울타리를 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우리를 경계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떡을 돌리기도 하고,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인사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라는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까닭은 때때로 최소한의 예의를 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이 ‘최소한’이 자신의 의도에 가려져서, 국제개발협력의 큰 뜻이 앞서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파견 현장에 새로 오는 분들에게 업무는 와서 배워도 되니까 현지 인사말 하나만은 꼭 기억하고 와달라고, 그리고 현지 직원들은 물론 사업 참여자들을 처음 만나면 꼭 현지어로 인사부터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8년의 시간 동안 이게 지켜진 적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6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 현지 직원이 있다. 확인해 보려고 한 적은 없지만 이제 어느 정도 영어는 물론 한국어도 눈치껏 알아듣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까닭에 매년 새로운 직원, 봉사단원, 외부 출장자, 평가단 등을 맞이할 때가 많은데, 매번 무표정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던 그 직원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던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최소한의 예의는 최대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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