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나도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 그 자체가 내 삶의 일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일 그 자체가 내 삶이기에 야근을 해도, 주말에 행사가 있어 일을 해야 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 스트레스도 받고 ‘일하기 싫다’를 입버릇처럼 내뱉었지만 나에게 work와 life는 하나의 덩어리였기에 이 둘의 균형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에 진심인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 때 더 상처를 입고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7년간의 해외 파견 중 가장 마음을 다쳤던 기억을 뽑아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일주일 동안 하혈을 하게 했던 그 일을 떠올릴 것이다. 남성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경우 스트레스 받거나 극한의 상황에 있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신체가 생식 기관이다. 가장 예민하지만 몸이 극한의 상황에 있을 때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이기도 한 곳. 오히려 생존에 있어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그 아이는 아주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데 생리기간이 아닐 때 부정출혈을 하기도 하고, 평소 생리양보다 적거나 많게도 하고 생리를 멈추게도 한다. 어떤 반응을 보여주든 그럴땐 ‘아, 내가 지금 극도의 스트레스 받고 있구나.’ 혹은 ‘내가 지금 정상 범위에서 한참 벗어 났구나’하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혈을 하고 나서야 나에게 큰 상처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파견 2년 차가 되었을 때 파견된 단체의 현지 한국인 관리자가 새로 부임하였다. 나는 현지인 직원과도 꽤 친하게 지냈고 아무런 문제 없이 이미 지난 2년간 현지 파견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 평가했다. 이 말 외에도 여러 말들을 했지만 다른 어떠한 말보다 저 두 말이 나를 후벼 팠다.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저 말을 듣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부정출혈이 일어났고 일주일 동안 청바지가 젖을 정도의 하혈을 했다. 그때 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먹는 것을 택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정크푸드를 폭식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껴두었던 불닭볶음면 두 봉지를 끓여먹거나 맥주에 짭짤한 과자와 젤리 여러 봉지를 털어 넣고 주말엔 시내 한인촌에 가서 짬뽕 한 그릇에 맥주를 마시며 마무리로 밥 한공기까지 말아 입가심을 하였다. 본래 부터 지병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렇게 몸에 안좋은 음식을 먹고 나면 탈이 나곤 했지만 그렇게 해야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현지에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야 타지에 있다고 해도 어찌 되었건 가족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안도감이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찾아가 만날 수 있는 데다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 질 높은 문화생활, 쾌적한 환경 등 해소할 거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파견지에서는 혈혈단신 의지할 곳 하나 없고 요즘에야 인터넷 발달로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지만 시차로 인해 서로 생활하는 시간대가 달라 내가 필요로 할 때 통화가 어렵고 같은 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이야기 할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나를 이해해 주기 어려워지는 데다가 현지에서는 한국어가 아닌 제 2 외국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 문화생활을 하기엔 다소 열악한 환경,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쾌적하지 못한 생활 환경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되면 한국에서 보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 되기 쉬울 것이다. 나는 꽤 오랜 시간 파견되어 있었고 잘 적응하고 재밌게 지내고 있었기에 '이게 체질인가봐!' 하며 자부했지만 건강하게 나를 돌보지 않았던 지난 7년간 나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거기에 출산과 육아가 도화선이 되어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나는 한 번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육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아이가 먹는 것은 유기농 식재료에 단탄지를 알차게 구성하여 한 끼를 차려주는데 정작 내가 먹는 밥은 후루룩 마시기(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거다...) 위해 밥에 김 싸먹거나 불어 터진 라면으로 떼우기 마련이다. 거기에 아이는 하루종일 나에게만 붙어있어 내 한 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없고 커갈수록 자기 의사가 생겨 떼쓰고 우는 것을 하루 종일 듣다 보면 노이로제가 걸려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지르고 만다.
20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부터 요즘 핫한 ‘금쪽같은 내새끼’까지 상담을 해주시는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런 부모이지 않나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가끔은 나는 저 정도까진 아니다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고 나의 행동과 비슷한 모습에 뜨끔하기도 하면서 아이에게 늘 사랑을 주고 품어주는 큰 어른이 되고픈데 현실은 아이에게 내 기분대로 짜증을 한가득 내놓고는 미안함을 느끼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렇게 나를 자책하고 정신적으로 수축되는 자신을 돌보지 못한 2년을 보냈다. 나의 몸은 한계에 부딪혀 갑자기 몸무게가 10kg 빠지고 복통과 두통이 심해져 갔다. 먹는 것이 낙이었던 나는 살기 위해 최소한의 음식만을 겨우 섭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체적 고통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서 지내기만 했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찾은 병원에선 영양실조와 지병이 심해졌다고 했고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를 처방해 주며 2주에 한번씩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꼈다. 나를 위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운동과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인생의 재미가 사라졌지만 하루를 살아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강력한 내 생존본능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가면역 질환의 일환인 지병을 가지고 있던 나는 우리가 건강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채소와 과일에 독소가 들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식물이 동물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식물성 단백질인 ‘lectin’이 몸에 들어와 염증을 야기하고 이것은 자가면역 질환자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한 항생제, 소염제, 제산제, 화학물질이 렉틴과 결탁하여 몸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나는 lectin-free를 기반으로한 keto 식단을 시작했다. 세세하게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간단히 말해서 밀가루, 설탕, 쌀, 콩, 고춧가루, 과일, 씨많은 야채-예를 들면 오이, 토마토,호박-를 배제 했고 무항생제 돼지고기, 목초사육 소고기, 자연 방목한 닭고기와 달걀을 주 단백질 공급원으로 섭취하였다.
내가 이렇게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도대체 뭘 먹고 사냐고 물어보는데 생각보다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물론 외식과 배달 음식은 먹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마트에서 파는 간장, 고추장에도 밀과 설탕, 화학물질이 들어가니까...) 오로지 내가 신경 써서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물론 귀찮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몸을 보면서 다음 병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두통과 배변장애가 사라진 것이었다. 렉틴-프리 식단을 한지 3주 만에 찾아간 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두근두근 떨렸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3년간 더러운 음식을 먹어 놓고 고작 3주 깨끗한 음식을 먹었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바라면 욕심이지 했지만 기대가 되는 것을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내 몸은 빠르게 좋아져 있었다. 염증 수치가 정상 범위로 들어와있던 것이다.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를 먹었을 때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던 높은 수치들이 확 낮아진 것이다. 너무 기뻐 그날 나에게 라면을 허락했다. 그렇게 추석을 지나 지금까지 거의 한 달 동안 렉틴 프리를 하지 못했다… 나의 몸은 빠르게 좋아졌던 것만큼 빠르게 나빠졌다. 바보 같은 인간. 병원 가는 날이 두렵다. 반성한다.
다시 나를 아끼고 돌보는 식단을 시작하고자 김칩에 선언해 본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건강한 자신을 위해 멍청한 혀와 호르몬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음식 예를 들면 엽떡, 치킨, 라면, 햄버거, 빵, 마카롱…(먹고 싶은 것 절대 아님) 먹지 말고 저와 같이 클린한 식단 함께 하는 것 어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