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족과 연말과 연시, 명절까지 보내면서 파견지에서 홀로 보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처음 해외 파견을 나갈 땐 많은 기대를 했다. 이른바 빈곤 퇴치와 개발 도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인류애가 어쩌고저쩌고 뭐 그런 것 말고 현지인과 베프가 되기도 하고 시골 마을 주민들과 이웃의 정을 느끼며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현지인 외의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같이 여행도 가고 그런 것 말이다. 해외 파견 후기에서 선배들의 빛나는 추억을 읽으며 나도 파견 나가면 그렇게 될 거라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러나 나는 아싸(outsider)였다. 본래 친구도 몇 없는 데다 마음을 열고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좀 긴 편이다. 8년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지인이 ‘너는 너의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니 말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선을 긋고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그때 인지했다. 혼자 내적으로 친밀감을 느낄 뿐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고 거기다 선까지 그어대니 상대방은 ‘쟤는 나랑 친해질 마음이 없구나’하고 점점 멀어졌고 그렇게 난 아싸가 되었다. 그 와중에 이런 내 성격을 무던하게 받아내는 사람만이 내 옆에 남아 있었다. 아, 이렇게 쓰다 보니 지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함이 느껴진다. 어찌 되었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인 편이다. 그러나 그 시도를 즐기는 것에 그치고 거기서 더 깊은 관계로 만드는 것에 서툴렀다. 이런 내 성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파견을 나가면 외국인 친구를 잔뜩 사귀고 나 또한 선배들에게 들었던 멋진 추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파견 첫해는 새로운 환경이라는 신선함과 설렘 때문인지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도,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하기도 했다. 그 해 명절엔 현지인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그의 고향집에 방문했다. 사실 초대를 받았을 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거절할까 했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철저한 계산으로 초대에 응했다. 현지인의 집에서 보내는 명절은 그의 친척도 만나고 명절 음식도 먹으며 현지의 명절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멋진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니 여간 불편하고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일주일 간 있기로 하고 갔지만 3일 만에 일이 생겼다며 둘러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에게 미안했다. ‘그가 기분 나빠할까? 내내 불편해했던 내 마음을 눈치챘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제서야 편안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현지에서 명절은 쭉 혼자 보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혼자 심심하지 않냐며 외롭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물론 외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외로운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순간의 주변의 풍경과 그때의 내가 한 장 한 장의 사진으로 찍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자신을 연민하며 쾌락을 느끼는 변태인 걸까.

이런 나이지만 인싸(insider)를 동경한다. 어디서나 사람들의 중심이 되고 친구가 많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들의 아우라가 부럽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파견 후기를 적었던 그들은 파워 인싸였고 그들이 그렇게 지냈던 건 해외 파견을 나가서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최근까지도 파견 기간 동안 이렇다 할 현지인 친구 하나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몇 없는 현지인, 외국인 친구와의 추억을 사골국물 우리듯 우려먹었다. 나도 후기글에서 보았던 그들처럼 지낸 것처럼 꾸며내었다. 사람들은 7년간 파견 생활을 한 내게 현지인 친구가 정말 많겠다며, 현지어도 잘하겠다며 부러운 듯 대단하다 했지만 사실 내가 꾸며낸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난 지금에 와서야 그들과 다른 나를 인정하고 그들처럼 지내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부럽긴 하다.)

그러나 현지인 친구가 없다고, 그들처럼 자랑할 만한 추억이 없다고 나의 파견 생활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혼자 골목 구석구석을 걸으며 사람 사는 것을 느끼고 아무 버스나 타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지만 얕은 정을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느꼈다. 명절 때 집으로 초대한 그 친구는 어쩌고 친구가 없다고 하냐고? 일 년에 한번, 이 년에 한번 그렇게 연락이 점점 줄어 연락이 끊겼다. 아마 그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나를 느꼈을 것이다. 그 현지인 친구 외에도 우려낸 사골 속에 있는 다른 친구들 또한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해외에 파견된 지 햇수로 8년 차인 지금의 나는 나를 인정하고 그냥 혼자 잘 지낸다. 더 이상 인싸들의 추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외로움이라는 추억이 있는걸?

나 말고도 해외 파견 기간 동안 현지인이나 현지에 있는 외국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적은 파견 후기는 없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멋진 추억이진 않으니까. 그러나 동족들이여 기죽지 말자. 파견지에서 현지인 친구 하나 없다고 그들의 생활에 내가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자.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 이곳을 마음에 품고 사랑하며 그들을 내 마음에 담았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사랑도 사람임을. 혼자 바라만 보는, 드러내지 않는 짝사랑도 사랑임을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