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가 넘치던 인턴 시절 아주 가끔 사무실에 출근하시는 이사장님이 오는 날에는 사무실이 아주 분주했다. 대청소하고, 의자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닦아야 했고, 커피를 타서 방에 가져다 드려야 했다. 난 그것이 아주 불만이었다. 내가 왜 청소를 해야 하며 커피를 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러려고 취직한 것이 아닌데.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내가 남자였어도 커피를 타고 있었을까. 성질 같아서는 이런 건 내 업무가 아니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순탄한 사회생활을 위해 꾸-욱 참았다. 그러면서 이런 부당함을 참고 있는 내가 싫어졌다. 그렇게 온몸으로 불평을 내뿜는 내게 이모뻘 되는 선배 간사님은 어색하게 웃으시며 뭐라고 하셨었는데 그 말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겠지? 그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이건 무조건 부당한 일이라 확신하고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옳다 생각했지만 아니다. 이런 일이란 뭘까?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면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그게 정해져 있나? 물론 자기가 마실 차는 자기가 타 마시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겠지만 어른에게 아랫사람으로서 커피 한 잔 타서 내어드릴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그렇게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같은 직급에 남 같이 있을 때 여자한테만 굳이 커피 타라고 시킨다든지, 여자가 타는 커피가 맛있다든지, 거기다 어린 여자라는 말까지 했다면 점입가경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아랫사람으로서 도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마음 먹기에 따라서 다른 일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중소단체의 작은 사무실에서 청소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할 수는 없었고 내가 업무하는 이 공간을 청소해서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업무의 능률이 오른다면 청소를 하는 것 또한 나의 업무일 것이다. 자기 방은 자기가 치우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 또한 나 혼자 한다던가 여자라는 이유로 해야 한다면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부당한 것이지만 말이다. 청소하고 사무실에 방문하는 손님에게 차를 내어 드리는 것 또한 하나의 업무 기술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이 말과 행동이 꼰대 짓일까 아닐까 고민을 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신입의 패기도 선배의 노련함도 부족한 그런 어중간한 연차가 되어 어느 쪽에도 맘 편히 낄 수 없게 되었다. 꼰대는 나이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많아 그가 경험한 것이 많아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을 받아들여 주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설령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 나름을 존중해주고 그가 하는 실패와 성공을 응원해주는 그런 어른도 있다. 물론 아주 극소수이지만 그런 어른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라떼는 말이야’를 수도 없이 참아야만 한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는지 나보다 어린 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인지, 너희들이 힘들다 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 군말 말고 하라는 것인지 우리는 수도 없는 ‘라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 라떼 시절 우리의 꼰대들에게 ‘그건 옛날이야기고 지금은 달라. 나는 달라’라고 속으로 외치지 않았던가. 요즘 MZ세대가 당차다고 하는데 우리는 뭐 당차지 않았었나. 젊은 꼰대가 무섭다는 말이 있다. 꼰대는 나이와 숙련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최고이고 자기가 생각한 기준만이 진리라 생각하는 좁은 식견과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나이 많은 꼰대보다 젊은 꼰대가 무서운 것은 그가 경험한 티끌만 한 경험이 다인 줄 아는 그 어리석음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나는 3년 차 만에 젊은 꼰대가 되었었다. 후임이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선임으로서 그를 가리켜야 했다. 고작 3년 차였지만 나는 엄청 선배인 양 굴었다. 물어볼 것은 안 물어보고 혼자 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안 물어봐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물어봐서 얼마나 답답해했는지 모른다. 왜 이것도 모르지? 왜 저렇게 눈치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정말 일머리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 나름대로 고민하고 고민했을 텐데 말이다. 그에게 나는 물어봐도 지랄 안 물어봐도 지랄인 인간이었겠지?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히 해두고 싶다. 단언컨대 그는 일머리가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실행하려 했냐이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 인가를 아는 것이다. 당연한 거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입자에게 주어진 결정권이라는 건 없다. 결정권이 없다는 것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하는 이 들이 꽤 있다. 아마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NGO라는 일의 특수성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본부에서 일한다면 또 다르겠지만 현지에 파견되면 한국인 상사는 몇 없고(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는 현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결정권과 책임이 어디까지 있는지 그 경계선을 파악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처음에 그는 인수 인계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들도 물어봤고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책임 지려 했다. 지금이라면 일머리는 없어도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여 하나씩 알려줄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젊은 꼰대가 되어 혀를 차고 무시했다.

꼰대들에게 일머리 없단 소리 듣지 않고 싶은 신입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가지는 자신의 자리를 배정받으면 컴퓨터에 남아있는 파일을 하나씩 다 뒤져보라는 것이다. 만약 업무 인수 인계서를 받았다면 하루에 열 번은 읽어 보자.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신입 때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사업 결과 보고 및 증빙을 위한 서류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잡일 3대장’이 여기에 있다. 영수증 풀칠, 복사, 스캔. 굳이 하나 더 덧붙이자면 후원자 우편 발송 작업까지 신입에게 제일 많이 시키는 일인데 이걸 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일을 시키는 상사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건 잡일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자기가 해야지 왜 신입을 시키나.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라고 신입들은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잡일 맞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일. 잡일이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면 그건 생산성 없는 잡일이 되는 것이고 ‘이 영수증은 뭐지’ ‘이 보고서는 뭐지’’어떤 후원자가 우리 단체를 후원하고 있지’ 하고 하나씩 살펴보며 일하면 하나의 프로젝트를 내가 끝낸 것 같은 생각까지 들게 되고 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사실을 알게끔 해주는 것도 선배의 역할이지만 우리에겐 그런 선배가 없었다.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 1,000장이 넘는 영수증 풀칠하고 복사했어’ 같은 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 후원자 우편 발송은 NGO뿐 아니라 국제기구에서도 하는 일인데 국제기구의 인턴에게도 시키는 일이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장(長)이 와서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알려주고 인턴들의 사기를 높여 준다는 것에 있다.

나는 이제야 후배들에게 조금은 어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겐 당연한 것도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고 모를 수 있다. 서로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에. 나에게 없었다고 나의 뒷 세대들도 같은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업무 프로세스가 없으면 구축해주고 인수인계서가 없으면 만들어주자. 지금 시키는 이 일을 통해 뭘 습득했으면 좋겠는지 알려주자. 패기 넘치게 들어왔다 나가떨어지는 아까운 동료를 많이 보지 않았나. 더 이상 개발협력은 좋지만 이 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지쳐 그만두는 동료가 없도록 후배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선배이고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