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체류 1년이 넘었다. 어느샌가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초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저 매일매일 내 삶을 비관하고 한숨만 푹푹 쉬며, 살아야 할 이유조차 나 스스로 되묻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이런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해질 때면, 스스로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다고 자기 발전을 위해 책을 읽거나 공부하겠다는 나와 약속은 한 시간을 채 넘기지 못한다. 가장 쉬운 일부터 하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나에게 가장 쉬운 일은 책상 위에 앉아있는 일 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것이었지’ 생각한다. 그리고, 한순간 다시 게을러지기 전, 일어나 해변으로 향한다. 오늘은 그동안 마음속으로 골백번 결심만 한 해양 정화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환경에 대해 민감’했던’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도 한국에서 만든 좋은 습관을 이어 나가기 위해 플로깅 모임도 찾아두는 치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덕에 일 년 후 이렇게 결심을 이행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환경을 위하는 삶과는 멀어졌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배달온 플라스틱 식기를 사용하는 위선자다. 그리고 오늘은 그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왔다.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 오폐수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 오폐수

가나에는 여러 환경정화모임이 있다. 그 중, 나는 아크라의 Tawala beach에서 매주 일요일 진행되는 Let’s go clean the beach라는 페이스북 그룹에 참여해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설렘 반, 귀찮은 반, 주말에 할 일도 없으니 누워 유튜브만 볼 바에 오늘은 내 살갗을 한껏 태우며 바다를 청소하리라. 트로트로도 우버도 다 필요 없다. 넘쳐나는 시간을 지우려 설렁설렁 걸어간다.

타왈라 비치 전경, 밥먹는 봉사자들

타왈라 비치 전경, 밥먹는 봉사자들

멍청히, 그리고 눈에 초점 없이 ‘차이나’, ‘니하오’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는 이미 단체 티셔츠를 맞추어 입은 이-삼십 명의 패거리가 모여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 분명 저 모임이 분명하다는 확신과 함께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이 맞다. 두꺼운 장갑과 쓰레기를 긁어모으기 위한 갈퀴, 빗자루, 마대자루 그리고 손수레까지 나름 있을 것 다 갖춘 전문적인 모임처럼 보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도우러 왔다 의사를 전하니 ‘중국인’ 친구인 나에게 마대자루를 쥐여준다. 나의 임무는 재활용 가능한 페트병 줍기다. 그들도 나름 각각의 임무가 있다. 누구는 알루미늄 캔, 누구는 페트병 뚜껑, 또 누구는 갈퀴로 쓰레기 모으기, 그리고 누구는 수레에 쓰레기를 담아 선별장(선별장이라고 하지만 결국 공터에 모아 태우고 만다.)으로 옮겨가기...(모임의 대장은 앞장서 줍지는 않고 사진만 찍어 올린다 ㅋㅋ)

페트병 선별장 아닌 선별장

페트병 선별장 아닌 선별장

쓰레기 선별장 아닌 선별장

쓰레기 선별장 아닌 선별장

오늘 활동할 지역의 범위가 그다지 넓지 않다. 1km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해안이 이들의 매주 활동 지역이다. ‘쓰레기가 있어야 얼마나 있겠어!’ 생각했지만, 플로깅은 꿈도 꾸지 못했다. 허리 굽혀 줍고, 줍고 또 줍고.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만 두 마대 자루를 채우고도 남았다. 놀라운 것은 매주 줍고 또 주워도 같은 양의 쓰레기가 매번 쌓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말 동안 이 지역에서 해변 파티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주변에는 많은 리조트가 있다). 모임의 대장인 Togbe씨는 이들 중 많은 쓰레기가 미국과 유럽의 것이며 대서양을 통해 온다고 나에게 설명해 주지만, 사실 나는 안다. 페트병에 붙어있는 라벨들이 가나의 것임을... ㅎㅎㅎ 그렇지만 어쩌랴, 인간으로 태어나 나의 터전이며 어머니인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유럽 쓰레기든, 아프리카 쓰레기든 깨끗이 주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열심히 함께할 뿐이다.

색깔별로 분리하려 하는 페트병

색깔별로 분리하려 하는 페트병

클린 더 비치!

클린 더 비치!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줍다 보니 내 마음도 함께 비워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다. 더러운 생각들, 이기적인 생각들도 함께 버려지고 있는 것일까? 매일 매일 책상에 걸터앉아 거드름이나 피우고 문서나 만드는 나는 분명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개발협력은 무슨! 줄에 묶인 ‘개’처럼 밥시간만 기다리고 상관의 눈치나 보며 살고 있는 거지! 그렇지만, 오늘의 이 기분은 어떤가? 내가 지향하고 바라왔던, 의미 있는 삶에 조금은 가까워진 날이 아닐까? 그리고 생각한다. 취약한 이들과 나누는 인생을 결정했고, 이 목표에 다가서고 싶다면, 분명 나의 직장일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나에겐, 직장은 어디까지나 직장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이상적인 생각은 이젠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잃어버린 나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작은 일 이나마 ‘눈에 보이는 일’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겨본다.

누군가 오늘의 나와 같이 길을 잃고 무기력에 빠져있다면 오늘 하루는 컴퓨터와 책은 집어치우고 바깥에 나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그 사람의 마음에 길을 찾아줄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