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하던 기관의 대표님은 사람 말을 참 안 들었다, 라고 말하면 당신은 ‘혹시 이 사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기관 출신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관 대표라는 직함은 어디 가서 사람 말 참 안 듣는다는 소리 좀 들어야 가질 수 있는 자리라도 되는지, 나는 그저 흔한 국제개발 NGO 한 곳에서 일했을 뿐이다.
그래도 대표님은 어디서 일은 참 많이 가져왔다. 개발 이론이라든가 사업 전략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슨 일이든지 가져와서 우리들을 부려 먹었다. 대체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기를 들 수 있는 건 1년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배터리 인턴뿐이기에, 나 역시 대표님이 뭐를 시키는 족족 고분고분 듣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대표님이 휠체어를 기증 받았으니 다짜고짜 미얀마로 보내라고 하셨다. 당시 미얀마 사업 담당이었던 나는 대표님에게 미얀마는 인도도 잘 없고 길이 좋지 않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많지 않으니 다른 국가를 지원하거나 목발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표님은 격양된 목소리로 “인도적 지원은 그냥 일단 하는 거야!” 라고 소리쳤다. 이에 질세라 “인도적 지원도 인도가 있어야 하든가 하죠!” 라고 받아쳤는데, 대표님은 내가 말장난이라도 한 줄 알고 피식 웃고 말았다. 아뇨, 잠깐만 대표님. 저는 대표님 웃기려고 일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인도적 지원 주위에는 너무 많은 함정이 놓여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무언가를 주고 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지원해준 만큼 나중에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당장 도움이 필요한 비상사태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것뿐이지, 그 이외에 다른 것들이 붙을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인도적 지원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어 보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늘 이 ‘인도적 지원’을 위협한다. 그야말로 사람이 안전하게 걷기 위해서 마련된 인도 옆으로 시속 180km의 화물차가 달리는 차도가 있는 것처럼 인도적 지원은 늘 아슬아슬한 위치에 놓여있다.
결국에는 인도적 지원에도 안전 수칙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인도를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인도적 지원과 국제개발 활동을 구분 짓기도 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대로 인도적 지원에 다른 여지를 붙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국제개발처럼 효과성, 지속가능성, 영향력 등이 아니라 지원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구분일 뿐, 인도적 지원에도 최소한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단순히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인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이 인도가 얼마나 안전한지, 보도블록은 연말마다 갈아엎을 필요는 없는지, 그리고 이 길의 끝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인도적 지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인도적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몇몇 기관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말은 귀 기울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표님은 인도적 지원은 그냥 일단 하는 거라고 했지만 세상에는 그냥 일단 한다고 되는 것은 없다. 대표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지금까지 기관 직원들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런 사람이 대표일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인도적 지원을 온전히 실현할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날의 힘든 기억은 이제 잊고 보다 넓고 평온한 마음으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을 고민해본다. 아니 근데 진짜 아무래도 그때 내가 그 인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