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제77차 유엔 총회(UN General Assembly). 이번 유엔 총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대통령 2인이 있다. 한 명은 ‘이 XX’ 파문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콜롬비아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이다. 파문을 일으킨 자는 국제적 조롱 대상으로 전락한 반면, 콜롬비아 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뤄 낸 페트로 대통령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처하는 정치의 자세’가 무엇인지 연설하여 많은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콜롬비아 신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는 한국처럼 대표적인 미국의 우방 국가 중 하나이다. 200여 년의 공화국 역사는 보수우파 혹은 극우 성향 대통령의 집권으로 이어져 왔고 정치-마약 카르텔-미국의 협력 구조는 공고했다. 반면 40%를 상회하는 빈곤율과 20%를 넘나드는 청년 실업률, 10%에 다다르는 물가 상승률은 민생을 짓눌러왔다. 한국은 요즘 6%대 물가 상승률에도 민생이 휘청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충격까지… 만성적인 부패의 고리는 시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이에 콜롬비아 시민들은 변화를 택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좌파 세력에게 국가를 운영하라 명령했고, 구스타보 페트로는 3% 차이로 별명이 ‘콜롬비아의 트럼프‘이자 베네수엘라에서 넘어온 여성 난민들을 ‘가난한 아이들을 낳는 기계’라 표현한 극우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4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저명한 정치인이자 좌파 게릴라 출신인 페트로는 경제학과 환경을 공부한 사람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 기여했고, 시의 자원순환 시스템을 개혁하는 등 친서민적이며 환경적 관점을 견지한 시정운영으로 인정받아왔다. 특히 민영화되어 있었으나 쓰레기 처리와 분리배출에 있어 부족한 점이 많았던 시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공영화하여 시스템의 개혁을 이끌어내려 했던 그의 노력은 상당히 유명한 일화이다. 좌파 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페트로를 견제하기 위해 보수 세력은 페트로의 이 결정에 대해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포퓰리즘식 정책결정’이라 비판했고, 검찰은 여기에 동조하여 페트로의 공영화 결정이 위법사항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고자 동분서주했다. 먼지털기 식 수사는 결국 페트로가 위법을 저질렀다는 짜맞추기식 논리 구조를 완성했고,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옹호하며 결국 페트로를 시장 자리에서 해임했다. 그러나 6개월 후 대법원 선고를 통해 대통령의 해임 지시는 위헌으로 결정되었고, 검찰의 수사와 달리 페트로의 쓰레기 수거 정책 공영화는 위법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콜롬비아 검찰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남아있으며, 오히려 페트로의 이미지를 친환경, 친서민적인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격상시켰고, 그를 향한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의 행보는 그 후로도 꾸준히 이어져 이번 대선에도 이어졌는데, 주요 공약으로 에너지 전환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을 주장하며 석탄·석유 개발 신규 허가 제한을 공식 발표했고, 석유와 가스의 수출에 대한 세금을 높이는 반면 가스 가격 상승이 예상됨에도 오히려 보조금은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우기도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무게, 음료에 첨가된 설탕의 양에 비례하여 세금을 인상할 계획도 있다. 세제 개편에 있어서도 부자의 소득세를 인상하고 법인세 면제를 폐지하는 등 부자 증세의 기조를 강력히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 노선의 경우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실용적 관계를 약속하며 실사구시적 면모를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하여 바이든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그의 국정운영에 기후변화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수억 명의 목숨을 앗아갈 기후 재앙은 지구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야기된 것입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그가 남긴 연설은 기후위기 시대의 지도자가 견지해야 할 관점과 자세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총회 연설에서 “선진국들은 마약을 없앤다며 열대우림을 불태우면서 소비, 권력, 돈 같은 다른 중독을 위해 더 많은 석유를 요구합니다.”. “코카인, 석탄, 석유 중 무엇이 인류에게 더 해롭습니까?”라는 말로 세계 주류들의 정의로 위장한 자본주의식 정치 논리를 꼬집는다. 또한 "평화 속에서만 우리는 우리 땅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정의가 없다면 평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지구와 전쟁을 하고 있다. 지구와의 평화 없이는 국가 간 평화도 없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으로 20세기 이데올로기 싸움 식으로 말로만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는 것이 아닌 ‘모든 관계와의 평화’를 주장한다. 그리고 “코카인과 마약 중독, 석유와 석탄 중독 뒤에는 비이성적인 권력, 이익, 돈에 대한 중독이라는 인류 역사의 현 단계의 진정한 중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소멸시킬 수 있는 거대한 치명적인 기계이다"라고 함. 그리고 "평화가 필요한 때"라며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와 대화하자고 세계에 역설하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화를 이룩해야 하고, 그 시작은 평화를 향한 열린 마음의 대화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주지시켰다. 본 연설을 마친 후 페트로 대통령은 곧바로 글로벌 식량 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글로벌 식량 위기에 대해 논의한 후 익일에는 유엔 기후변화 고위급 회담에서 어떻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적응하여 살아갈지에 대해 각국의 정상, 세계적 환경운동가들과의 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페트로 대통령이 추구하는 콜롬비아는 명확하다. 무장단체와 평화를 이루고 부를 재분배하여 마약 의존도를 줄여 안전한 콜롬비아를 만들고, 화석연료 채굴 자체를 막고 숲을 보호하는 대신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전환을 통해 ‘미래를 끌어다 쓰지 않고’ 콜롬비아의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은 인권, 성평등 등의 가치를 주류화하는 방식으로써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콜롬비아의 미래를 꿈꾼다. 한 명의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이뤄낼 변화를 상상하며 다시금 희망을 품어본다. 오늘의 페트로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회 운동가들이 죽었고, 마약과 범죄가 사회를 유린했으며,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져 왔다. 하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열망은 계속되었고 건국 이래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뤄냈으며 시민들의 열망을 구현할 수행자로써 구스타보 페트로라는 걸출한 인물을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그럼 콜롬비아의 변화를 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혹자는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 써봐야 기후변화 못 막아”. 확실히 그 방법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가치와 방향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정치인을 만드는 데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스스로가 올바르다 여기는 가치와 방향에 맞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 주변의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그 에너지를 모으고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