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ENFP 유전자로 하여금 해외에서조차 낯선 사람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미용실만큼은 뭔가 다르다. 어차피 머리 좀 망쳤다고 외모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옥의 27층에서 29층으로 떨어지는 정도지만, 망친 머리가 복구되기까지 불가피하게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악몽으로 다가왔다. 그런 까닭에 해외 파견 생활을 시작하면 밥집 다음으로 신중하게 물색하는 곳이 바로 미용실이다. “옆머리는 소프트 투 블록으로 층을 내주시고, 앞머리는 장원영처럼 해주시라, 그리고 뿌염 안 해도 되게 저녁노을처럼 은은하게 그라데이션으로 색을 넣어 주시고요.”라고 말하기는커녕 “조금만 잘라주세요(cut it little)”를 “짧게 잘라주세요(cut it short)”로 오해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파견 2년 만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이발소를 찾았다. 다행히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당황하지도 않았고, 동남아 미용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헤어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도 적었다. 오히려 본인의 가게에는 한국인도 온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꾸 주변 손님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어느새 나에게 그 이발소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사교장이 되었고, 하루는 인근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6년 뒤 그 친구는 대학교 교수로 나는 국제개발협력 NGO 활동가로 다시 만나서 함께 일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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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어김없이 이발사는 먼저 머리를 자르고 있던 손님에게 나를 가리키며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서툰 현지어로 인사를 건네자 그 친구는 영어로 본인을 소개했다. 옆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고, 어릴 적부터 다니던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러 왔다고. 짧은 영어 한 소절도 나누기 어려운 이 작은 마을에서 능숙하게 외국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그 친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나를 뻐렁치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반가움을 알아차렸는지 이발사는 “너까지 머리 자르고 셋이 같이 맥주 한잔할까?” 제안했고 – 역시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발사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 파견 생활 2년 차에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다가 이발사와 손님이랑 같이 술 먹기’라는 역사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소셜 미디어 계정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일상을 엿보는 사이가 되었다. 학업 때문에 고향에 자주 오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종종 안부를 물으면서 시간이 있으면 언제 한번 만나자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비록 그렇게 이발소에서 만나고 6년이 지나도록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지만, 느슨하게 연결된 우리 인연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결코 끊기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동네에서 다시 만나면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동네 친구 하나쯤은 곁에 있어도 외롭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어느 날 한국의 한 ICT 업체가 이곳까지 출장을 와서 현지 조사를 하다가 “옆 도시에 있는 정보통신대학교가 유명하던데, 혹시 거기에 아는 분은 없으시죠?”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6년의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 그 친구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27살의 학부생이었던 그 친구는 어느새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준비하면서 그 학교에서 강의까지 하는 교수가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걸어온 나의 전화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지난 추석에 고향에 내려갔었는데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까지 했다. 추석은 고사하고 설날에도 집에 연락 한 통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머쓱해서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한국에서 온 업체가 협업하고 싶어 하는데 잠시 만나줄 수 있냐는 요청에 그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그럼 12시에 볼까?”라고 답해주었다, 마치 이발소에서 맥주 한 잔이라도 하자는 것처럼.

그렇게 다시 이어진 우리 인연은 단순히 한국 업체와 그 친구의 대학만의 협업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일하고 있는 기관까지 포함하는 구조로 업무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한국 업체 입장에서 현지에서 해당 대학교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했고, 그 대학교 역시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한국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두 쪽에서 모두 그 역할의 적임자는 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냥 이발소에서 술 먹고 친구를 사귀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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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6년 전 이발소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재밌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같이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우리의 작은 인연이 이렇게 다시 연결된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그 친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속 깊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야, 이건 네가 이곳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야. 만약에 네가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이 일을 그만두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도 못했고 이 일을 같이 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리고 나나 그 한국 업체나 모두 큰 기회를 놓쳤을 것이고.”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하루 즐겁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그 사람과의 인연은 6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어느 순간 다시 피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커다랗게 자라지 못할 인연도 있을 것이고, 이미 내가 멍청하게 놓쳐버린 인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서로 마음이 담긴 씨앗은 크든 작든 반드시 그 싹을 틔운다. 이 곳에 오래 머물수록 그 씨앗의 개수가 자꾸 늘어난다.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인연을 소홀히 여길 수는 없다. 씨앗이 따뜻한 환경 속에서 발화하는 까닭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