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커리어 시작을 국제개발협력으로 결정한 모태는 2012년에 시작한 지역 청년 봉사단 활동이다. 당시 지역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무를 하던 나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꽤 재밌던 나머지 복지관의 주말 프로그램에도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하며 그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증폭시키고자 복지관에 자주 오는 청년 자원봉사자들, 봉사에 관심이 있는 동료 사회복무요원들을 꼬셔서 십여 명 되는 지역 청년 봉사단을 만들었다. 7년 정도의 활동을 뒤로 하고 우리의 봉사단은 사라졌지만 당시 10대, 20대였던 멤버들 중 다수는 정기적인 봉사활동 경험을 계기로 그와 관련된 삶의 방향을 찾아갔다.

그 중 한 멤버는 이후 지역 청년활동, 지역 주민자치회 코디네이터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사회 활동을 이어나갔고 2018년 우리 지역의 시의원이 되었다. 자란 지역에서 청년활동을 하고, 지방자치 활동으로 현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한 덕에 이 친구는 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신속하게 정비해나갔고, 그가 시의원으로서 보여준 성과와 활동은 시의 청년 시의원이 더 많아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데 기여했다. 내 친구는 안타깝게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저지르는 바람에 현재는 시의원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의 가까운 친구가 시민사회를 벗어나 정치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은 ‘사회 변화’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활동하는 내게 학습할 거리가 많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친구가 주도하여 시의 기후변화 대응 조례를 제정한 것이다. 시는 기후위기 취약도가 높고 잠재적 기후취약계층도 많이 거주하지만 이에 심층적으로 접근할만한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 기후에 관심 있는 시민이 부족했고 이는 기후를 다루는 지역 정치인의 부재로 이어지며 기후 무관심 정서가 컸다. 내 친구도 역시 기후를 중요한 아젠다로 삼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에겐 정치인이면 당연히 기후 대응 활동을 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는 활동가(=핑키)가 있었다. 그도 처음에는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좋은 일’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그와 만날 때마다 기후무새가 되어 기후 이야기를 했다. 지겨웠을지 모르겠지만 만남이 쌓이며 이것이 ‘필요한 일’임을 자각한 그에게 기후 대응은 지역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아젠다로서 스며들었다. 그리고 기후 대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중앙 정부의 움직임과 맞물려 우리 지역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첫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이 조례는 시의 기후 대응 정책 수립 과정에 시민의 감시와 자문 과정을 덧붙였고 시민, 지역정부, 산업 등 다양한 주요 주체 간의 네트워크 생성에 기여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조례가 제정된 후 시는 전반적으로 기후 대응 활동이 많아졌다. 앞으로 민간 재단, 기후활동 기관이 만들어진다면 더욱 힘을 받을 것 같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듯이 난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에 고정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어느덧 햇수로 3년째 매주 20~30분 동안 정치시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에게 기후, 환경을 중심으로 한 정책, 흐름, 개념을 설명하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RE100과 CF100은 어떻게 다른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줄 영향은 무엇인지’,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왜 표류하고 있고, 유사한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유를 재생에너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와 같은 시의성 있는 이슈를 매번 다르게 선정하여 이해하기 용이하도록 전달한다. 방송 초창기에는 적게는 5만, 많게는 20만 정도의 우리 프로그램 시청자 중 “너 왜 정치시사 방송 나와서 자꾸 기후위기 이야기를 해?”라고 질문이나 경우 없는 악플을 다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 일은 환경운동가들이나 하면 되는 일이고 시민들은 텀블러 사용하고 안 쓰는 형광등 끄면 된다는 인식이 컸다. 아니면 지구를 후끈하게 불태우고 다 같이 죽든가. 하지만 요즘엔 실시간 채팅이나 댓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악플은 가끔 달리지만 ‘똑똑해 지는 시간’, ‘유용한 기후, 환경 정보를 얻는 시간’이라는 반응이 늘었고, 자신의 기후 행동을 다짐하는 반가운 댓글도 종종 눈에 띈다. 중간중간 ‘RE100’을 모르는 대선 후보가 나타나는 등의 상황이 펼쳐지면 기후 환경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반응이 많아지는 버프도 받았다. 무엇보다 ‘좋은 일은 딴 데 가서 해라’는 식의 댓글은 거의 사라졌다.

반응이 달라진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추측한다. 내 주제에 흥미가 없는 시청자들이 떠난 것, 매주 이어지는 기후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스며든 것, 그리고 한국 사회의 기후 감수성 상승 대비 정부, 기업 등 기후위기 책임 주체의 연달은 헛발질로 인한 위기감 증가 때문으로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니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우리 시청자들 중에서는 기후위기와 정치, 경제, 사회 간의 상관관계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당위성, 연민을 뛰어넘는 기후위기와 일상과의 연결을 알고 싶어 한다. ‘북극곰이 죽어가요’보다 ‘죽어가는 북극곰과 나와의 연결’을 점점 더 궁금해 한다. 이런 성격의 정보는 개인이 노력을 해서 얻을 만큼 간절하진 않지만 대신 누군가 쉽게 설명해준다면 땡큐다. 그렇게 차츰차츰 젖어들게 되면 북극곰의 이야기는 북극곰의 이야기로만 해석되지 않게 되고 기후 대응을 역설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닌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나아가 이런 변화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약속하는 정치인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기후 대응 약속을 어기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난 나의 사회 변화 활동의 하나로 정치 영역에서의 기후, 환경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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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하시네요.”

여러 설명을 붙여 나를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라고 소개하면 돌아오는 메아리다. 반면 기후 활동가라고 소개하면 “필요한 일 하시네요” 혹은 “그러게 요즘 날씨가 왜 이래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돼요?”와 같은 생활 속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온도차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어느덧 재작년 일이 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터졌을 당시 한국 사회는 이례적으로 이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지상파 뉴스, 신문,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 헤드라인과 주요 소식으로 앞다퉈 미얀마 소식을 보도했다. “미얀마 왜 저러는 거죠?”, “앞으로 어떻게 도우면 되는거죠?” 같은 질문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며 누군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길 바라는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 역할의 대부분은 정치 전문가, 경제 전문가, 외교 전문가, 혹은 유튜버들이 담당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미얀마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 사회의 한 가운데로 나가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소통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존재감은 미미했다. ‘좋은 일’의 벽을 뚫고 국제개발협력 분야만의 소중한 경험을 활용하여 커뮤니케이터로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벌어진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사태는 미얀마 쿠데타 당시와 비슷한 상태였다.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소재가 한국 사회의 정중앙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그간 빈곤 포르노와 싸워온 역량으로 빈곤 포르노의 개념을 전문적으로 설명하며 시민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다가설 수 있었다.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생소한 빈곤 포르노라는 주제에 서명할 정도로 사안에 관심이 컸지만 미얀마 때처럼 이번에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회 비주류 분야인 국제개발협력이 주류 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어 ‘좋은 일’ 프레임을 벗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볼 수 있었으나 버스는 또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