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김치앤칩스는 새로운 코너로 ‘국개협 무물’을 시작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며 드는 여러 질문들을 받아 공적인사적모임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자들이 답변을 하여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레아 님의 기획과 주도로 시작했는데 벌써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자주 등장하는 질문 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개발협력 일하기 좋은 곳 추천해주세요’이다. 정말 어렵다. 어느덧 나는 9년 차 활동가가 됐다. 2015년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파견생활도 하고, 창업도 하고, 팬데믹도 겪고 하다 보니 어느덧 활동은 9년 차, 프리랜서로서는 5년 차가 되었다. 처음부터 프리랜서를 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선택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 보니 이미 비전이 갖춰져 있고 내가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한 기관들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에는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차선책을 찾고 다른 방법을 찾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재밌던 일도 많았고 의미 있는 일도 많았고 즐거움도 많았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상당했다. 가장 큰 고통은 역시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겠다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자체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해 물음표가 끊임없이 붙는 것이었다. 시작할 때 큰 꿈을 안고 함께 개발협력 분야 일을 시작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분야를 떠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분야의 낡은 조직 문화와 국제개발협력의 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듯한 운영과 행보에 큰 실망을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자꾸 퇴사를 한다며 그 책임을 철없고 치기 어린 마음 탓으로 돌리지만 글쎄 동의하긴 좀 어렵다. 내 눈에도 이 분야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계속 붙었으니까. 그런 허수아비 때리기만 반복하니 변화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임금 고노동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고, 이에 염증 난 중간 관리자급의 활동가들은 점점 사라지며 분야의 전반적인 허리가 얇아졌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리를 저연차 혹은 YP, 인턴으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도 금방 떠난다. 3년 안에 떠난다는 연구도 있던데 동의하는 편이다. 하물며 이젠 봉사단원이나 YP 같은 이 분야에 진입하는 이들의 숫자 자체도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일하기 좋은, 비전 있고 멋있는 분야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 것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고 본다. 요즘엔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내가 일할 곳에 대한 리뷰를 잡플래닛 같은 곳에서 사전에 확인해보니까.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피다가 열었던 노.이.솔.그에서 다양하게 다루었으니 이 에세이에서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단 왜 뉴스레터를 시작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조금 더 읽는 맛이 날 것 같다.
나 역시 기관에서 일하던 시절 다양한 부조리를 경험했고 이게 과연 공익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관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컸었다. 사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이를테면 학교 다닐 때나 ROTC 시절, 그 외 여러 작은 사회에 소속되었던 시절 부조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른바 나는 늘 빨갱이의 포지션에 있었다. 당시 나의 저항은 모조리 실패했다. 심지어 ROTC에서는 잘리기까지 했다. 아닌 걸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을 그때 깨달았다(똥을 굳이 찍어 먹어봐야 맛없음을 아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똥을 찍어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때는 생각해 보면 늘 나의 목소리로 개인으로서 나의 의견을 표현했었는데 당시엔 그것이 누군가에겐 도전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조직은 모든 조직 구성원의 최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보통 우리가 목격하는 조직문화는 조직의 고유목적보다 권력을 사유화하여 사적인 목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더욱 많은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들어온 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 모 기관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그 부조리가 분명하게 눈에 보였고 눈 감고 있기엔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조금씩 동료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노조를 만들고 싶었지만 벌금을 내서라도 노조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사측에서 주장을 하길래 당시 계약직이었던 나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적당히 협의회 수준으로 조직해서 노사의 의견을 교환하는 공식적인 루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그것은 그저 노사의 공식적인 채널이 만들어진 것이지 그 채널을 유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노측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노들은 본인이 노인지 사인지 구분하지 못했고, 노조 악마화에 머리가 절여진 경우도 있었으며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몸을 사리는 이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토론을 통해 서로 타협하는 경험이 일천했던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시민단체임에도. 하지만 그 책임을 나와 같은 노들에게 돌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짜여진 한국 사회가 문제이지 그 시대를 살아온 나와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들이 문제인 것은 아니니까. 그들을 책망하는 것은 출생률이 세계 최저라고 청년들을 나무라는 기성세대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역량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사내에 전체 메일을 돌려서 이른바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시민사회 기후환경 스터디 모임’이었는데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에 본인이 해당된다면 참여하라고 설득했다. 첫째, 이게 NGO야? 싶은 사람. 둘째, 기후변화나 시민사회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 셋째는 그냥 주말에 나와서같이 수다 떨고 싶은 사람. 전체 노들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우리는 정기적으로 주말마다 만나서 기후변화나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민사회에 대한 강의를 듣기도 하고 함께 친환경 텃밭을 운영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역량과 유대감을 키워나갔다.

결과적으로 당시 스터디 모임에 있던 이들은 90% 이상 퇴사했다. 하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고, 당시의 유대감은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 인원이 모여 시작한 활동이 있으니 그것이 김치앤칩스 뉴스레터였다.
나는 이 과정을 주도하며 크게 세 가지를 느꼈다. 첫 번째는 ‘조직의 결성 이유가 공공성이 있고 그 방식이 민주적이라면 성품이 좋고 유능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는 것이구나’였다. 당시의 직장생활은 지독하게 구린 조직문화 때문에 뇌가 썩어가는 것 같았지만 함께 모임을 하는 20명 가까운 동료 활동가들이 있어서 즐겁게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그 멤버들은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 함께 활동하고 서로 지지하고 있다. 모두가 퇴사한 건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오래 다니는 문화도 아니니.
두 번째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해봤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건 웬만하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조직된 힘의 가능성을 아는 사람들은 서로 모여 타협하고 더 큰 힘을 만들어내려 한다. 우리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도 커뮤니티 베이스의 프로젝트를 할 경우 지역 위원회나 자조모임 같은 조직화를 자주 한다. 그런 위원회나 자조모임이 결성되는 동기와 절차가 민주적이며 명확하고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면 사업의 효과도 더욱더 배가 될 것이다. 그런 현지 조직을 만들 수 있는 힘은 국내에서 충분히 연습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산출물이 있다는 건 참 훌륭한 구심점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에는 누군가 공익적인 잡지를 만든다고 하면 ‘저 활동에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며 의심스럽게 반문했다. 그런데 매주 뉴스레터라는 산출물, 텃밭에서 키운 농산물 같은 산출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산출물이 눈에 보이는 그 과정은 활동을 하는 이들이 효능감을 느끼고 계속해서 연대할 수 있는 접착제나 어떤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번 산출물을 낸다는 건 꾸준한 노동력과 어느 정도의 피로감을 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덕분에 좋은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사부작거리며 재밌게 작당할 수 있으니 교환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사적모임은 어느새 40명이 되었다. 그것도 워킹그룹으로만 40명이 모였다. 공적인사적모임에 함께 하는 이들이 이 활동을 선택한 마음은 무엇일까. 공적인사적모임의 비전? 뉴스레터 활동이 좋아 보여서? 아니면 사적인살롱이 재미있었으니까? 물론 그런 것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공적인사적모임과 함께 한다면 무언가 사부작거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닐까.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정감, 즐거움, 동지애, 뿌듯함, 자부심,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마음, 그 과정에 대한 동경과 신뢰 때문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경험은 개발협력 현장이나 자신의 일터에서 유능함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변화의 시작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