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결혼 축하한다! 초대해줘서 정말 고마워. 근데 내가 도저히 날짜에 맞춰서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말 미안해…”

“세상에 아기가 벌써 유치원에 갔어? 세월 참 빠르게 간다. 그동안에 얼굴도 한번 못 봤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직접 찾아 뵙고 조문해 드리고 싶으나 해외 있어 부득이하게 메시지로 연락드리게 되어 너무 죄송합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지 10년, 어느새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 단위로 한국을 떠나 생활하며 가족과 지인을 만나지 못하거나 경조사에 불참하는 횟수도 늘어만 갔고, 일 년에 한 번 잠시 휴가로 한국에 들어가 마치 밀린 과제를 해치우듯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굳었다. (항상 귀한 시간을 내서 만나주는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한다.) 친구들을 만나는 건 물론 항상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특히 그들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연다는 소식을 들을 때 그 느낌이 강해진다. 내가 아는 모습과 지금이 너무나도 달라져서, 나는 마치 드라마를 일시 정지하듯 우리의 과거 모습을 저장해 두었는데 친구들은 이미 다음 시즌의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런 모습을 보며 ‘아,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느껴질 때도 있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이 기분이 단지 내가 조금 뒤처져서 느끼는 조바심이라 착각했다. 나보다 일찍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을 보면서 나도 빨리 학업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고, 대기업에 취직해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한국에서 안정적인 고소득 직장을 찾아 정착하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을 보면서는… 음, 별생각이 없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와는 담을 쌓고 살고 있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른 생각이 조금씩 머리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느슨한 하나의 시간성에서 나와 다른 이들이 위치와 속력만 다를 뿐 대체로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완전히 다른 좌표축에서 각자의 속력과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 그 선이 겹칠 일은 어지간하면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랑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적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예전의 생각을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와서 따지자면 우습긴 하지만, 해외에서 사는 게 한국보다 편하긴 하다. 나라를 옮길 때도 무엇을 챙겨야 할지, 어떤 식으로 정착해야 할지 패턴이 생겼다. 놀고 쉴만한 곳은 어디인지, 집은 어떻게 구하면 될지, 온갖 잡다한 민원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에 관해서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하고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국문 자소서보다는 영문 Cover Letter 쓰기가 수월하고, 보고서와 논문도 영문 자료가 국문 자료보다 편하게 다가온다. 물론, 영어를 잘한다는 건 전혀 아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0개국어 구사자이다!).

처음 파견을 나갔을 때는 적응하며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빠 정신이 없었다. 항상 이어지는 정전과 단수, 바퀴벌레와 쥐에 익숙해져야 했고, 마음같이 진행되지 않는 내 사업과 독촉하는 사무소, 사비를 털어가며 사업을 조금이라도 진행하려는 조급함은 일과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이상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만큼 능글맞음이나 여유도 없을 시기라 웃으며 사업을 해결한다는 방법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이며 모든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 외로움이란 -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어느 정도 내 생활과 일이 안정권으로 접어들 무렵부터였다. 사실 절대 감정이 예민한 사람이 아닌지라 처음 외로움을 느꼈을 땐 매우 당황스러웠다. 로봇 같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더욱 그랬다. 애인이나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소위 말하는 옆구리가 시리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고, 그보다는 무인도에 고립됐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매달, 또는 매주 만나 같이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들이 현장을 떠나고, 또 나도 떠나며 하나둘 연락이 끊겼고, 아직도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 그 중에 국제개발협력 현장에 있는 사람은 – 열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관계가 멀어질수록 한국과의 관계도 조금씩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단절감과 가끔 닥쳐오는 예상치 못한 여러 나쁜 상황. 이에 더해 ‘나는 왜 여기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이곳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내가 한국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집어삼킬 때도 있었다. 이제까지 이뤘던 모든 걸 다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업계와 전혀 연관이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몇 차례 했다. 어두운 생각이 문득 심하게 들던 어느 날, 이러다가는 내가 정말 좋지 못한 수렁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 일었다. 억지로라도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만 했다.

용기를 내서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연락했고,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평생 하지 않던 취미생활도 여럿 만들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에게도 다시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하고, 그들의 것을 들어주기도 했다. 마음을 열고, 웃음을 늘렸다. 사람 때문에 다친 마음을 사람으로 회복하는 방법을 배웠고, 덕분에 내게 국제개발협력과 해외 생활은 10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처음 밟을 때처럼 다시 한번 지속 가능하고, 인생 그 무엇보다 즐거운 결정이 되었다.

외롭거나 우울한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아직 똑같은 사람이고, 지난 세월 쌓아둔 짐을 한 번에 떨쳐버릴 수 있는 능력은 없으며, (한국에 없는 것을 문제라고 한다면) 근본적으로 해결된 문제 역시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얻은 것은 외롭다고 지금을 버리지 않는 법,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상황과 기회에 감사하며 – 세상에 남의 돈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있겠는가 - 사는 법,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이다.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사람들이 해외 생활을 하며 겪는 어려움은 크다. 물질적인 것 외에도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로움과 거기에서 나오는 우울함 역시 아마 대다수가 겪는 문제일 것이다. 매우 안타깝지만, 이 업계에 있는 한 외로움은 계속 싸워야 할, 아니면 항상 같이 있어야 할 동지와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고된 해외 생활에 지쳐 외롭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당신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응원하고 싶다.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어도 좋고, 한국과 타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연락해도 좋을 것이고, 공적인사적모임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해결법이 될 수 있다. (매우 중요하므로 강조 표시).

이런 어려움을 겪을 게 뻔히 보이는데, 국제개발협력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 자문해 보았다. 비트코인, 주식, 치킨집 등 부질없는 망상이 잠시 스쳐 지나갔으나 결국 답변은 뻔했다. 지난 10년간 했던 고생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해도 다시 한번 이 길을 그대로 걸을 것 같다.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던 결정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