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인생에 왔다가 또 가기도 하지만, 나는 또 파견지의 다른 사람들에게 온 사람이자 갈 사람이며, 한국에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는 나는 그저 ‘간’ 사람이 된다.

#내 동지는 어디에

요즘엔 개발협력이란 일을 위해 해외에 나온 나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인턴 경력까지 기꺼이 쳐주겠다면, 개발협력 경력 2년 차. 친한 친구들도 직장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된 것만 같다. 세대 상관없이 말만 하면 다 아는 대기업에서 넉넉한 월급을 받으며, 흔히 말하는 얇고 길게 쭉 일하고 싶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요즘에는 안정적인 직장이란 것도 없다지만) 항상 다음 파견, 다음 계약을 생각해야 하는 부담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졌다. 무엇보다도, ‘동기’라는 소중한 존재들이 그들의 회사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으쌰으쌰 동기애를 쌓아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 참 부럽기도 하다.

개발협력 업계에서 입사동기라는 건 참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큰 NGO나, KOICA 같은 기관의 경우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 일반 규모의 NGO와 국제기구에선 입사동기라는 건 천운이 아닌가. 인생 첫 경력 YP도 코로나로 인력이 줄어 나 한 명만 뽑았고, 그다음엔 계약직, 그다음은 두 나라에서 홀로 파견. 참으로 외로울 수가 없다. 무언가를 새롭게 경험할 때 동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그나마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사업이 끝나면’ 왔다가 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에 정의할 순 없지만 마치 무언가 불안정하게 돌아가는 LP판 같다. 나도 곧 떠날 사람이기에.

하루는 정말 말 그대로 환영회와 환송회를 한 자리에서 함께 한 적도 있었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오묘한 경험이었다.

#사랑. 와도 되는데, 가지는 말아줘

특히나 국제기구의 “정규직이란 없다! 웰컴 투 계약 넘어 계약 산”을 마주하고 나니, 불안정성에 국제기구라는 꿈을 놓았다는 구전 같은 그 이야기가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마음 한 구석 어딘가 선택지처럼 남아 있다. 파견이 국룰인 개발협력 업계에 뛰어든 여성 주니어로서 많이 듣기도, 이제는 고민하는 것은 바로 연애와 결혼이다. 서른을 갓 지난 여성 선배들의, “젊을 때 파견 다녀와라.’, ‘나중에는 연애, 결혼, 육아 생각하면 더 어렵다.”는 이야기도 머릿속에 짙게 남아, 그저 여기저기 파견 생활이 즐거울 것만 같았던 국개협 바라기 시절의 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파견 다음은 어디? 그럼, 연애와 결혼은 언제? 30대에는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 하는 생각도 이젠 그냥 숨기지도 않을 만큼 원하게 되었다.

개발협력 업계에서, 특히 현장에서 나보다 먼저 길을 개척하는 여성 선배들을 만나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때로는 서로에게 우리 얼마나 멋진 여성이냐며 파이팅 하자고 외치곤 한다. 연애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지만, 최근 김칩 무물보 3화 “우리*** 연애 어떻게 ***해요?”의 반응이 뜨거웠던 걸 보면 사랑 문제는 개발협력 업계에서 모두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고민인 건 틀림없다!

몇 일 전, 함께 베트남 소재 국제기구에 파견 나온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 주변 몇 안 되는 개발협력 업계에서 일하면서 결혼을 한 인생의 선배이기도 했다. 나의 연애와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개발협력 업계 특히,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만나야 하는 배우자의 역량이 있다며 “웃픈” 공감을 나누곤 했다. 시차가 있는 파트너와의 협력을 빼놓을 수 없는 국개협 분야의 특성인지, 국제기구의 업무 강도 때문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업무시간 외 온 전화에 편하게 통화하라고 갓길에 차 세워주기,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을 때 노트북을 켜고 일할 수 있는 와이파이가 있는 장소 찾아주기, 그런 상황에서도 1시간이 지나건 2시간이 지나건 그저 조용히 불평불만 없이 그 상황을 존중하기, 심지어는 집에서 야근해도 자지 않고 앞에서 기다리기 등 그녀는 가끔 참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런 최고의 Supportive한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에 베트남에 와서 잘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파트너는 “Supportive가 한국어로 든든한 지원군인지, 아니면 헌신적인 파트너인지로 번역되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솔직한 반응을 보였는데, 참으로 웃픈 상황이었다.

#마무리하며

츤데레 동료들의 생일 파티 (감동) (우는 건 아님)

츤데레 동료들의 생일 파티 (감동) (우는 건 아님)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나의 인생에 왔다가 또 가는 사람들. 언제쯤 이 오고 감이 익숙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 오고 감에 마냥 무뎌지고 싶지는 않다. 오고 감을 잘 맞이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생길 때까지… 오늘은 현장 활동가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