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ROTC 출신 공익이라는 독특한 군 경력 소유자다. 학군단 대표로 축구 대회에 나갔다가 허리를 다친 것이 화근이었다. 허리를 다쳤다고 얘기하면 혹시나 임관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몰래 병원 치료를 받으며 후보생 생활을 꾸역꾸역 버텼는데, 결과적으로 임관하지 못했고 허리만 더 아파졌다. 그때 다친 허리는 지금까지도 나를 고생시키는데, 평소에도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고, 2년에 1번 꼴로 일주일 정도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의 통증이 온다는 것이며 목 디스크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오래 하거나 일상에서 무리하면 목 디스크가 세게 오는데, 이것도 허리디스크 버금가는 통증이어서 목 보호대는 기본이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목에 놔야 그나마 진정이 된다. 치료할 타이밍을 놓친 내 허리는 만성 질환이 되어 나의 일상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고, 그 고통을 내 몸 여기저기로 퍼뜨려 버리고 말았다.

최근 부산국제교류재단에서 개최한 B-ODA 밋업데이 행사에 1:1 커리어 컨설팅 전문가로 참여했다. 백여 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한 큰 행사였는데, 난 그중 국제개발협력 커리어를 꿈꾸거나 고민 중인 부산 청년 5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나름의 깊은 고민을 하며 다양한 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컨설팅을 마치고 내용을 정리하며 이 5명의 고민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선배의 부재'였다. 정확히는 2~30대를 함께 살아가며 그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와 상담, 솔선수범으로써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선배 말이다. 이 분야에 입문하는 이들과 밀착하여 조언하고 함께 성장해 갈 바로 위 세대의 존재. 이 이야기를 지방 출신 국개협 활동가들에게 나눴다. 그리고 그들은 ‘그나마 부산은 사정이 가장 나은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국개협 관련 시설은 늘지만, 국개협 생태계는 없다는 말과 함께.

나의 성장 과정에서 나보다 몇 살 많은 누나, 형들은 내게 대단한 취업 자리나 해외유학 기회를 주지는 못하지만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었고, 수많은 인생 꿀팁을 전수해 줬다. 누나들은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 여성을 대하는 매너, 페미니즘의 관점 등을 그때그때 조언해 주었고 형들은 옷 고르는 법, 짧은 머리 잘하는 미용실, 여자친구와 가기 좋은 와인바 같은 것을 알려주었다. 주거를 걱정하는 내게 집을 사주지는 못하지만 술 한 잔을 사주며 내 걱정을 들어주었고, 일자리를 연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휴민트로서 내가 이력서를 내려는 곳의 정보를 알려주고 가까운 맛집을 공유해 줬다. 보호받는 느낌은 든든하고, 내 삶을 풍성하게 한다. 그들은 지금도 나의 한 보 앞을 비춰준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세상에서 선배들이 비춰주는 딱 한 보 앞 빛은 삶의 가이드다. 그리고 그런 빛이 하나씩 모여 가로등이 되고, 등대가 되고, 태양이 되어 내게 안락함과 성장하는 에너지를 나눠준다.

출처: libcom.org

출처: libcom.org

보통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입문하는 인턴 5년 차 이하의 주니어 실무자는 박봉에 계약직을 오가며 일을 배운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국제개발협력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이 분야가 나와 궁합이 맞는지도 판단한다. 그 결과, 이 분야에 대해 이른바 ‘각’을 파악하고 퇴사하거나 아예 ‘탈'국제개발협력하는 현상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게 이 분야의 허리는 얇아지고, 허리가 없는 피라미드의 아래층에서 버티는 인턴과 5년 차의 부담은 가중된다. 이 현상을 신속하게 제대로 진단하고 대응하는 조직은 다시금 지속가능한 지구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그저 ‘요즘 어린 것들은~’ 정도로 치부하며 빈곤 포르노 따위로 연명하다 겨우 남은 5년 차 이하마저 떠나버리고 결국 피라미드의 최상단만 초라하게 남게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는 점점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질과 양을 떨어뜨리고, 그 악영향은 고스란히 현지 주민들에게로 전이된다.

언제부터일까, 남의 삶에 관심을 갖고 ‘왜 국제개발협력을 하는가?’로부터 시작하는 철학적인 고민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 중간 세대가 부재한 생태계, 중간이 부재한 피라미드의 맨바닥에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만성이 된 것이. 위에서는 지역의 사례를 들었지만 서울도 예외는 아니며 현지 파견 현장은 더욱 그렇다. 허리가 아프다고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맘대로 걷지도, 눕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삶을 나는 감내한다고 치더라도, 이런 삶을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삶이라며 권장할 수 있을까. 한 번 다친 허리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신속하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상당히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은 상태로 혹사가 반복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스스로 서지 못한다. 개도국 주민의 지속가능한 삶과 자립을 추구한다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언제까지 ‘허리' 없이 서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