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밀렸던 사업의 개막 행사가 드디어 지난 월요일 치뤄졌다. COVID-19로 국경이 봉쇄되고 사업팀은 커녕 자국민도 마음대로 오고가지 못하던 지난 몇년의 세월을 견디고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고 온갖 기자재와 펀딩이 드디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막행사도 나름 성대하게 치뤄졌다. 대통령과 모든 유관부서 장관을 초청하고 한국 대사님도 오시고, 현지에 대사관, 영사관이 있는 모든 나라와 NGO에도 초청장을 돌렸다.
결과만 보자면 모두가 만족한 행사였다. 기관장은 거추장스런 행사가 끝나서 만족했고, 공여기관은 고위직과 국가 주요인물이 많이 와서 만족했고, 대사님은 정부 고위관계자와 대담을 할 수 있어 만족했고,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은 윗분들이 행복하시니 만족했다. 행사 내용이라봐야 여타 사업 개막행사와 다르지 않았다. 오신 귀빈의 축사와 간단한 사업 설명, 전통 행사, 사진, 그리고 점심 (혹은 커피, 혹은 저녁, 혹은 전부 다) 이후 끝나는 간단한 행사였고, 참가자 모두가 적당한 사은품과 꽉 찬 배를 품고 돌아갔다. 음식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던게 참가자 만족도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았나 싶다.
행사 뒷정리를 대충 마무리하고 오후 일정을 위해 혼자 먼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행사도 끝나고 차에서 에어컨도 빵빵 터져 긴장도 풀렸겠다 참아왔던 불평불만이 터져나온다. 뭐 어때 아무도 듣는사람 없는데. 날은 왜그렇게 덥고 그늘하나 없는지, 우리 기관장과 공여기관은 행사 시작 5분전까지 요구사항이 이렇게 많은지,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도 안했는데 밥부터 물어보는지. 한참을 궁시렁거리다 문득 이번 행사와 사업으로 이 나라에 뭐가 남게되고,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 생각해봤다. 사업 문서의 내용이야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이뤄지는 사업이 몇이나 되겠나. 하다못해 이번 사업도 COVID-19라는 아무도 예상못한 재난으로 하염없이 지연됐는데 분명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경되는 사업이 한둘은 아닐것이다. 앞으로도 그럴거고.
사업이 끝나면 뭐가 남을까. 한국에서 들어왔던 사업팀은 귀국할거고, 같이 일하던 현지 직원도 다 자기 길을 찾아 떠날것이다.들여왔던 기자재는 꾸준한 관리와 정비를 받지 못한다면 몇년 후면 먼지가 쌓이기 시작할 거고 약품과 식량은 반대로 빨리 소비해 남아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스템과 정책도 그렇다. 사업을 통해서 시스템을 개정하고 정책을 바꾸더라도 언제 또 개정이라는 이름으로 삭제되고 수정될지 모를 일이다. 건물정도 되면 10년, 20년, 정말 운이 좋으면 백년도 살아남겠지만 그렇다고 건물짓는 사업만 할 수는 없다. 예산도 시간도 문제거니와 건물이 필요없는 사업도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후속 사업, 사후평가 등으로 우리의 일이 다시 수면으로 꺼내올려지지 않으면 과연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남아있을까.
“남는 건 문서 뿐이다.” 예전 직장 상사가 즐겨하던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일을 했다는 증거를 남겨주는건 결국 문서고, 이건 사업이 성공하거나 망하거나 (슬프지만 있는 일이다) 변하지 않는다. 또 쓰긴 얼마나 많이 쓰는가. 주,월,연간 보고서에 예산 집행 내역, 행사 할때마다 계획과 보고, 출장 계획과 보고 등 자잘한 보고서만도 매년 백 개 가까이 써서 제출하는데 이쯤되면 내 보고서 하나정도 세상이 무너져도 누군가의 서류철 한켠, 메일 서버 한구석에 조용히 잠들어 있을만 하다. 하지만 내가 한때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증거가 어딘가에 박혀있는 “이번달에는 천만원을 집행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되는 예산 보고서라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했던 일이 떠나고 한참 뒤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을지 정확히 알 방법도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사업의 조사와 평가의 효용에 의문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평가를 넘어 10년, 20년이 지난 후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주는 사람이나 내가 한 일이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줬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뿐이다. 나름 큼지막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쯤 되면 시간에 희석되어 누군가의 변화에 유의미한 기여를 했는지 알아보기도 희미할 수준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에,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내 일이 유의미한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때로는 약간의 탈력감이 오곤 한다.
물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금방 사라지곤 하는데, 과거에 했던 행적들이 마치 채무자를 독촉하듯 찾아와 “나 아직 안죽었다!” 하고 소리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설명해줘도 내가 못알아듣는 IT 계열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가 정말 뜬금없이 나한테 르완다에 과학경시대회가 있었냐고 물어봤다. 밑도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일단 있었다고 대답은 해주면서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네 회사에 르완다 사람이 지원했는데, 자소서에 10년 전 과학경시대회 입상 경력을 적었단다. 어, 10년 전? 그거 내가 했던건데.

(10년 전 과학경시대회. 투석기로 과녁을 맞춰야 한다)
기분이 오묘했다. 내가 - 당연히 혼자는 아니다 - 조직한 대회에서 입상하고, 그걸 바탕으로 한국 장학금을 받아서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이젠 회사를 다닐 정도로 컸다는게. 10년 전의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어 직장을 구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내가 했던 일이 아직도 영향을 끼친다는게. 그 학생이 하필 내 친구네 회사에 지원했다는게 (아쉽게도 떨어졌다). 세상이 참 좁고,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려도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와…내가 이제 진짜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이 업계 일이 다 그렇지만, 결국 답은 사람이다. 사업을 통해 변하는것도 사람이고, 끝까지 남는것도 사람이다. 세대가 지나 내가 그 일을 했다는건 잊힐지 몰라도, 그 일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남아있다. 그걸 알기에 이 일을 계속 하게된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고 할 정도로 오만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았고 지금까지 기억을 해준다는 것. 가끔은 더럽고 치사해서 때려치우고 싶어도 이런 경험을 하고 “아, 그래 내가 이래서 국제개발협력을 하지” 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가장 많이 바뀐건 따로 있다. 바로 나다. 예전에는 개막식같은 행사 하나 하면 바로 퇴근하고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젠 일이 너무 많아서 다시 회사로 가야된다. 좋지 못한 변화다. 월급이라도 많이 받으면 몰라. 나도 퇴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