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 사는 한국인에게 김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진리이다. 며칠 전, 자주 가는 슈퍼에서 김치를 봤다. 정신을 차리니 가방에는 이미 다섯 통이나 들어있었고 지갑에선 60불이 빠져나간 이후였다. 300그램 한 통에 12불이라니 이런 폭리가 어디 있나 불평하면서도 4개월 만에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김치 맞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김치의 탈을 쓴 배추절임이랄까. 배추는 너무 절여져서 식감이 무너졌고, 액젓은 뭘 쓴 건지 비린내가 너무 강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건, 김치가 너무 달았다. 배추를 씹을 때마다 한쪽에선 짠맛이, 한쪽에선 단맛이 나오는데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인가 싶었다. 단짠 조합이 무조건 진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걸 꼭 한번 맛봐야 한다. 그 맛이 채소의 발효된 향과 액젓의 비린내와 합쳐져 나오는 그 오묘함은 마치 이베리아반도에서 탱고를 추는 여인을 연상시킨다. 반 통을 앉은자리에서 비운 입장으로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이건 김치가 아니다.

사실 처음 해외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김치 정도는 없어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김치보단 새로 경험하는 음식이 더욱 끌리기도 했고 더 저렴했다.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크게 생각나지도 않고 어차피 집에서 먹던 그 맛을 못 낼 것을 뻔히 아니 김치보단 다른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다. 특히 피클을 자주 담가 먹었는데 시원한 맛을 위해 무와 마늘, 생강, 파를 갈아서 넣고 발효를 돕기 위해 청주를 거르고 남은 탁주를 넣어 발효 시켰다. 음?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면 맞다. 이건 멀쩡한 백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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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파고들자면 아마 김칩 구독자를 절반으로 갈라 토론해도 평생 답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김치는 한국인에게는 단순히 매일 먹는 음식을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매운 걸 먹지 못하던 어린 나이부터 엄마가 씻어준 김치를 먹고, 나이가 들어서는 갓 무쳐서, 묵혀서, 끓여서, 부쳐서, 볶아서, 비벼서도 먹는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너무도 당연하게 옆에 있고, 내 인생의 추억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런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모일 때, 문화가 만들어진다. 김치는 나 혼자 좋아하는 독특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이며, 한국인 고유의 문화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며 옛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렝은 그의 책 미식 예찬에 기록한다. 음식은 사람과 한 나라의 사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더운 기후와 추운 기후의 음식이 다르고, 사막과 바다, 산의 음식이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이렇듯 각 지방의 음식이 지역성과 여기서 이어지는 향토성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듯, 누군가의 음식 취향은 그 사람이 어떻게 자라왔고, 무엇을 즐겨 먹으며,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알려준다.

개발협력 일을 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나라를 다니게 된다. 그뿐인가? 수도에 머무는 경우는 드물고 비행기, 차, 배를 타고 한참 동안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에서 일을 하고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데는 한식당은 당연하거니와 간단한 양식을 제공하는 식당도 없다. 결국 현지식을 먹거나 없는 재료로 어떻게든 창의력을 발휘해 한식 비스름한 것을 해 먹는다. 사실 크게 문제는 없는 게, 초반의 어색함만 벗어난다면 현지 음식도 굉장히 맛있고 적응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벌써 8년도 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르완다의 감자 사모사 (이걸 현지식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지만)와 아만다지 (튀긴 도넛)는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데, 아마 이쪽 일을 하며 출장을, 그리고 장기/단기 파견을 갔다 온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한 번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지 음식에 적응하고, 또 선호한다고 내가 현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거나 현지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식 말고도 그 땅을 형성하는 요인은 한없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 음식에 엮인 추억과 공감대, 그리고 역사가 내 것이 되기엔 여태 내가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내가 그 땅에서 보낸 시간이 한없이 적기 때문이다. 머리로 문화를 분석하고, 받아들이고, 관능적으로 음식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은 납득하지 못한 관습에 얼굴을 붉히는, 그 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인일 뿐이다. 그래서 한 지역에서 오래 계시는 분들을 존경한다. 10년이고 20년이고 한 나라 한 지역에서 사업을 하시며 마을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이분들이야말로 그곳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김치 하나로 여기까지 오냐 싶지만, 사실 사업을 할 때로 연결된다. 우리는 개발협력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고, 평가하면서 사업지역을 분석하고 체험하며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사업지를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수치나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혹은 표현하지 않는) 사회문화자산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그 과정에 포함되는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외국 원조 기관이 한국에 와서 김치에 들어가는 배추와 고춧가루가 몸에 나쁘니까 앞으로는 넣지 말고 대신 양배추와 소금만 쓰라고 한다면 이걸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이야 돈도, 재료도 주니 하라는 대로 한다지만 결국 결과물은 이상하다. 그 사람들 보는 앞에서야 -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 맛있다고, 참 뛰어나다고 하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나서도 이 사우어크라우트를 김치 대신 먹는 사람은 분명 극소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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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갈수록 관성에 따라, 타성에 젖어 일을 하는 나를 향한 채찍질이다. 이제 나름대로 경력도 있겠다, 현지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하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한 건 공감이나 이해가 아니고 어쭙잖게 배운 내 지식에 그들을 억지로 꿰맞춘 것에 불과했다. 이러니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나지. 내가 하러 온 것은 계몽이 아니고 협력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데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라는 내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자세를 은연중에 갖추고 이해관계자를 대하니 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런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누군가의 반면교사가 되어있었다.

늦은 것 같지만 지금부터라도 고쳐야지. 사업을 하는 이유도 있지만 현장에서 그들이 지금처럼 살고 활동하는데도 분명히 이유가 있다. 결국 그곳에 정착하지 않는 이상 나는 이방인이고,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많은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활동해야 하는데 현지의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나는 언젠가 (아마 이른 시일 내에) 떠날 사람이란 걸 자각해야 한다. 지역과 라포를 형성하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의견 수렴을 도모해서 단순히 내 사업 제안서에 쓰인 지표 달성이 아니라, 사업의 성과가 지역 사회에 융합되고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던 사업 이름과 나라만 바꾸고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 다야 훨씬 힘든 과정이지만 아직 개발협력 활동가라는 양심이 남아있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아마 계속 못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