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건너 중미로 향하는 길. 난생처음 가보는 중미 국가. 책과 미디어로만 보았던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중 한 나라, 니카라과로 향하는 길은 왕복 비행기를 6번 타야 하는 긴 여정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화산과 호수의 나라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국가 중 하나다. 오랜 기간 미국을 배경으로 장기 집권한 우파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좌익 세력이 정권을 잡았으나, 이 역시 집권 후 대통령 임기를 폐지하고 민중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등 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옷만 갈아입은 듯한 모양새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반공과 민주주의라는 허울과 인권과 자유라는 정치적 레토릭 하에 무자비한 장기 독재를 자행한 역사는 한반도에서도 질리도록 찾아볼 수 있기에 니카라과 현대사의 맥락이 아주 낯설진 않지만, 아는 맛이 무섭듯 아는 고통이 더 무서운 법. 신문 용지 수입을 제한하여 언론사가 신문을 찍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이 나라에서 과연 지역의 평범한 민초의 삶은 어떨지 더욱 알고 싶어졌다.
이번 출장은 다자협력 사업의 종료평가였으며 난 해당 사업의 기후변화 분야를 평가하는 사람으로 참여했다. ODA가 국제기구를 통해 지역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효과를 내는지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주민들의 삶과 관심, 대응 현황 등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기후변화 복원력을 높이는 블라블라'로 사업명에 기후변화라는 수식어를 크게 달았지만, 그에 비해 기후변화는 주요 성과와 활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를 일으킨 기여도가 극히 미미한 니카라과 사람들이 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을 스스로 쟁취하기 위한 기후변화 적응 기반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었다.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과 니카라과 농촌의 기후변화 대응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편 이번 출장 자체는 정말 즐겁게 다녀왔다. 출장팀 멤버 구성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인데, 내내 웃으며 왁자지껄하게 수다 떨며 다녔고, 그 내용은 가히 국제개발협력 판 알쓸신잡이었다. 공사모가 운영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오픈카톡방(https://open.kakao.com/o/gkyvAp6d)에는 국제개발협력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정말x100 자주 올라오는데 나의 이번 출장은 정말 사람 운이 좋았다. 반면 기후변화 평가를 하러 가는 내가 한국과 니카라과를 왕복하느라 내뿜는 탄소를 생각하면 양심에 찔렸다. 물론 내뿜은 탄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내 역할을 잘 해내면 되지만.

니카라과로 향하는 길. 보통 출장으로 선진국에 갈 일이 없는데, 레이오버로 미국에서 12시간이 생긴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시내 구경을 했다. 메이저리그 야구장 방문은 처음인 미국야구 20년+야덕의 설렘.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웠지만, 듣던 대로 마약이 만연했다. 지하철 객실 내에서 마약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도 말리지 않는 장면에서 코를 찌르던 마약 냄새는 잊히지 않는다.


산 넘고, 물 건너면 나오는 마을. 개천을 수없이 건너지만 학교에는 안전한 물이 부족하다. 빗물맥주 아저씨(https://youtu.be/MrEW5uVRi74?si=7jdUzjTkJqIc-NFr)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빗물이용시설이 프로젝트 활동 중 하나로 설치되었고, 학생들은 식전, 후 손을 씻는다.


하지만 탱크 내에 벌레 등 각종 이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탱크, 파이프, 지붕 등을 더 잘 관리한다면 더욱 안전하게, 나아가 식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 결과보고서에는 ‘시설을 지원했고 잘 사용한다’까지만 주로 적혀있지만, 직접 나와서 보면 보완할 점이 더 보이기 마련이다. 특이한 점은 방문한 지역의 대부분은 강수량에 비해 생활용수가 부족했으나 빗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경우는 적었다. 빗물을 활용할 수 있음을 알고 안 쓰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 쓰고 있었다.

조리가 가능한 급식시설을 이 사업의 일환으로 건축했고, 에코 스토브가 함께 들어갔다. 급식시설이 없던 때엔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음식을 학교에 도시락처럼 가져가서 전달해 줬다고 한다. 학교와 집이 도보로 30분~1시간 걸리는 경우가 많고, 산간 지역이라 걷기도 어려우며 지역으로 갈수록 마트 같은 것이 거의 없다 보니 직접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에코 스토브 덕분에 연료 효율이 높아져 장작 소비량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닥트가 있어 환기도 잘되고.

학생들은 급식시설에서 조리한 급식을 먹고, 학부모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참여한다. 현재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 학교 관계자가 이 프로젝트에 만족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음식을 더 다양하게 제공해달라고 요구한다. 냉장, 냉동 시설이 없어서 식단의 다양화에 한계가 있던데 태양광+냉장고 조합이 들어가면 어떨지 싶었다. 물론 그 전에 학부모 위원회나 마을 자치 조직, 지역 정부 등이 할 수 있을 만큼 주도적으로 먼저 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기후변화 대응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누가 해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먼저 해야 한다.

오가는 길이 즐거웠다. 정말 아름다워서. 차량 이동 외엔 대부분 도보 이동이다 보니 갈증이 많이 난다. 급하게 마실 걸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음료인 줄 알았는데 술이었다. 오히려 좋아. 덕분에 꿀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