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사모 내부적으로 국제개발협력과 직업윤리에 대한 스터디가 있었다. 세종시고라니님의 주제 강연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윤리 의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일생을 남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관심종자에게 윤리는 평생의 숙제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어디까지 따라야 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때로는 학습된 도덕관념이야말로 진정한 윤리가 아닐지 생각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던져도 대답 없는 질문’은 최소한의 불문율로 작용한다.

나 역시 종종 윤리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그 고민은 트롤리 딜레마같이 거창한 것은 아니고, 지역 주민한테 어디까지 얻어먹어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취약계층 가정 방문 모니터링 간 그들이 선의로 내준 음료수를 마셔도 되는 걸까? 농부 교육 프로그램 장소에 자신이 길렀다면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과일들을 받아도 되는 걸까? 지역 정부가 마련해준 만찬이야 파트너십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참석해도 된다고는 해도, 그 인민위원회 주석의 딸 돌잔치에 개인적으로 참석해도 되는가, 그리고 그가 답례품으로 준 영지버섯 담금주를 받아도 되는 걸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대한 관한 법률, 흔히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마음도 저릿하게 만든다.

여느 때와 다를 거 없이 무더운 어느 날, 전날 먹은 술 때문에 힘들어 아니 고된 사업지역 현장 조사에 지쳐 있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를 이곳에 보낸 상사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 끝에는 무심하게 코코넛 나무 하나가 걸렸다. 아, 시원한 코코넛 워터 한 잔만 마실 수 있다면! 이런 나의 속마음이 얼굴이 쓰여 있기라도 했던 건지 (그렇다면 그 마음은 베트남어로 적혀 있었던 걸까) 마침 조사를 막 마친 집주인이 내 눈빛을 단번에 읽더니 능숙한 솜씨로 코코넛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갓 잡아 온 코코넛 하나를 따서는 내게 건넸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나의 숙취 아니 업무 간 발생한 피로를 사업 참여자의 사유 재산으로 해소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맛있쪙.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베트남은 정이 넘치는 나라임은 틀림없다. 일단 어디를 방문하든지 간에 의자부터 내오면서 우선 앉으라고 하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다 싶으면 차를 내온다. 모니터링 설문이 끝나고 잠깐이라도 마가 뜨면 어디서 왔냐, 베트남에서 온 지는 얼마나 되었냐, (뜻 없이) 결혼은 했냐, 언제 다시 한국에 돌아갈 거냐, 끊임없이 묻는다. 나를 여기 눌러 앉힐 셈인지, 이러다가 저녁 먹고 잠도 자고 가고 이윽고 막내 자식과 결혼하여 아들 셋 딸 둘 낳고 장래 희망은 NGO 활동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로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 관심은 모두 대가 없는 정으로 환산할 수 있다. 나에게 그들은 하나의 사업 참여자지만, 그들은 대가 없는 마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주니 내가 어찌 그들의 정을 마다할 수 있을까?

29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jpg

(이 안에 개발새발 있음)

5년 전 베트남 중앙 정부 사람들과 협상이 결국 엎어지면서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회의장을 떠난 적이

있었다. 우리 쪽에서 준비한 계획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딱 잘라서 회의를 이어가기를 거절했다. 말이 협상이지, 공여 방식에 대한 절차를 정하는 자리였다. 타협 절충 양보 조율 협상안까지 거절한다면 우리는 원조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면 받지 않겠다’였다. 그렇게 삭막한 분위기로 회의는 끝났고 밖으로 나오니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리 미리 준비한 식사라고 해도 결과가 좋지 못했는데 숟가락 섞어가며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걸까 싶었지만, 결과는 결과이고 식사는 식사였다. 우리에게는 회의 결과가 중요했지만, 그들에게는 식사 자리까지 중요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언쟁을 했을지언정 오랜 회의가 끝나면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까지 하는 것이 예의였다. 회의 결과가 좋았다고 돼지고기가 소고기가 바뀌지도 않고 새우구이의 껍질을 까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세상이 공정을 외치고 있다. 불평등을 넘어서 불공정이 화두가 된 한국 사회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런 세태 속에서 우리들은 스스로 ‘공정’이라는 단어에 속박되기 쉽다. 나의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런 나의 선택이 사적인 관계로 인해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의 사적인 관계는 결국 서로 주고받은 물질에 의해서 형성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적어도 개발현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며 상황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때로는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공정은 아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에게 필요한 직업윤리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관계의 신뢰성, 그리고 그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라고 배웠는데 내가 제대로 스터디에 참여한 게 맞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