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으로 파견을 나온 지 2년 차에 접어든 내가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현장으로 나오면 한국에서 끌어안고 있던 국제개발협력(이하 '국개협')과 관련된 고민이 해소될 줄 알았지만, 아직도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제법 익숙해져 있던 시기, 나는 비행기를 타고 싶은 욕구가 목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여행, 출장, 파견, 어떤 목적이든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컸고, 파견을 결심하게 되었다. 해외 생활에 대한 기대와 함께 파견을 결정한 이유는 이 업계 종사자로서 현장을 이해하는 경험과 경력에 대한 필요성 반, 이 업계에 남아있을지 떠날지 후회 없이 결정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거창한 사명감과 확고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미해결된 고민과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도전한다는 설렘이 컸다. 매번 문서 작업만 하다 보니 현장을 보고 싶은 갈망이 컸고, 언젠가 한 번쯤 파견을 나가보고 싶었기에 '후회할 바에야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마침 운이 좋게 파견 기회가 생겼고, 적응만 잘하자는 마음으로 나왔다. 동시에, 현장에서 수혜자들의 진솔한 견해를 듣는 것에 대한 기대도 컸다.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하면 지원해줘서 감사하다는 현지인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 너머로 개선이 필요하거나 불편한 점 등 더 나은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듣고,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것이 이 업의 본질이자 사업 대상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축제 '페라헤라'에서 공연하는 현지인과 함께
섬나라 스리랑카에서의 파견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출국 전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관련 기사를 보며 걱정도 했고, 도착 후에는 우려했던 불안정한 국내 정세로 인해 처음으로 락다운(lockdown)을 경험하기도 했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멋진 자연경관, 순하고 친절하며 남을 위해주는 따뜻한 오지랖을 가진 현지 사람들로 인해 나는 금방 이곳에 빠져들었다.
물가는 디폴트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고 시위와 정치적 불안으로 언제 치안이 나빠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매력적인 자연, 사람, 문화가 있는 스리랑카는 나에게 더 살고 싶은 곳이 되었다. 높은 물가라지만 한국의 물가에 비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시위는 대개 평화 시위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곳에 있지만 파견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현지인의 생활과 대비되는 특권 같은 생활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파견 인력으로서 비교적 안전한 주거지에서 지냈으며 한국 기준으로 받는 임금 덕분에 이곳의 물가 대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경제 위기 이후 국가 상황이 악화하면서 연료 공급이 되지 않았을 때가 있다. 대다수 현지인은 장시간 정전으로 하루에 수시간 전기를 쓰지 못했고, 유류가 없어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으며, 가스가 없어서 요리도 제대로 해 먹지 못했다.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나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이전보다 많이 보였다.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기적인 생각처럼 들릴지 몰라도 내가 누리는 전기, 식량, 물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나의 안전과 안위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현지인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온 곳에서 한국인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에게 귀 기울이기보다 다른 외국인이나 여행객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종종 파견지에서 보내는 생활이 파견 전 스스로 기대했던 모습과 일치하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문제의식에 공감했기에 경제위기 속 시위행진단의 행동을 응원했지만, 반중 감정이 있는 국내 정세 때문에 아시안으로서 위협을 느끼며 조용히 스리랑카의 어려운 상황과 소식을 한국으로 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일을 통해 문제에 동참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현지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행동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았다.
2004년 스리랑카를 강타한 쓰나미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박물관
2004년 쓰나미 이후 자발적으로 박물관을 만든 스리랑카 현지인의 글
‘파견 생활을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국개협 종사자로서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의 기획 및 운영 단계에서 정부와의 협업은 필수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이나 지역 주민의 필요보다 정부의 이익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업 수행을 위해 협업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그 요구에 쉽게 No라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취약한 이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과거 국개협 사업을 하면서 기대했던 성과를 보지 못한 경험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국개협 실무자로서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업의 단기적, 장기적인 변화를 도출하는 이론은 많지만,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로 이론은 실제 적용되기 쉽지 않다. 특히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조율이 어려울 때는 답답해하고 대안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잘하고 있는 걸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금의 나는 답을 정해두지 않고 여러 입장과 의견을 듣는데 귀를 열어 두기로 했다. 특정 이해관계자만을 고려하지 않고, 안일하게 정형화되어 사업을 기획하거나 바라보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닐까 정리해본다.
문득, 국개협 업계에 첫 발을 들이기로 결심했던 나의 첫 마음을 돌아본다. 아는 게 없어서 열정이 가득했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며 겸손하게 다가갔던 과거의 나.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머리가 조금 컸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최선인지, 모든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지, 기존 사례를 답습하며 안일하게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지, 계속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