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의 한낮은 아찔하게 무덥다. PAO던 내가 일하던 공관 구석의 한 칸짜리 사무실은 서늘하다 싶게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뒀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따가운 햇볕이 일렁이고 가끔 뜨뜻미지근한 자연풍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를 좋아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마당에 주차된 사륜구동차들, 경비원과 운전기사들이 복닥거리는 좁은 경비실과 대문으로 다니는 손님들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

그날은 회의가 여럿 잡혀있어서 통역 겸 업무 보조를 하는 크리스가 출근해서 회의용 테이블 한쪽에 앉아있었다. 크리스는 격투 선수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청년 사업가로, 우리 프로젝트 통역 일을 아르바이트처럼 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남아공에서 살았고 대회 참가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단다. 평소 조용히 일하면서, 조금 빠진 앞니로 서글서글한 웃음을 짓는 친구였다. 이미 6개월 이상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서로의 나라와 각자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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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했던 킨샤사의 사무실과 밖으로 내다보이던 풍경)

"늦네요, 오늘도"

약속된 회의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목을 빼고 창밖을 내다보다가 크리스에게 툭 말을 건넸다. 짧은 반년 동안 현지에서 일하며, 이 정도의 기다림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역시 약간 짜증이 나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달래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콩고 사람이 늘 그렇죠, 뭐"

콩고 사람은 늘 그렇다고? 정말 그런가? 크리스의 별 뜻 없었을 말이 괜히 거슬렸다. 콩고 사람은 언제나 늦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이 사람이 현지인이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 이 나라 사람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콩고 사람이라는 이유로 늦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반박하는 내게, 크리스는 장난스러운 웃음 속의 시니컬한 태도로 기름을 부었다.

"근데 사실이 그런걸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간약속을 지키는 법도 없고, 우리끼리 뭐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그게 바뀌지 않는 본성이에요. 그러니 오랫동안 가난했고, 아직도 못 살죠."

유독 그날, 그 시간. 크리스의 한마디가 나를 아프게 찌르고 들어왔던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평소처럼 그냥 웃고 넘어가지 못했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이 답답한 순간마다 반농담처럼 하는 말이었고, 지금 와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어렸던 나도 몇 번쯤 뱉었던 말 같은데, 그날의 나는 어쩐지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랐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수긍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크리스에게 화를 냈던 날이다. 그리고 이 깊은 빡침 속에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 마주하는 무기력함이 깔려있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잘 살았나?’, ‘한국 사람은 원래부터 대단했기 때문에 갑자기 빈곤에서 벗어났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직후에 제대로 경제사회를 복구하려면 백 년도 부족할 거라고 평가받던 나라다. 언제나 약속 시간에 늦는다고 해서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까지 있었고, 한국 사람은 남에게 의존적이고 게으르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도 고작 몇십 년 전의 일이다. 콩고도 다르지 않다. 오랜 식민 지배, 이념으로 인한 가족 간의 전쟁을 연달아 겪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기에 당연히 겪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역사의 결과이자 새로운 역사에서 달라질 수 있는 일이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출생지와 민족의 본성일 리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서 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