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골 마을이라고 하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똑같다. 불친절하고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시골만능선량설'은 전세계 공통의 망상이라도 되는지, 대도시에 사는 베트남 친구들은 "그래도 그 동네 사람들은 좀 착하고 순수하지 않아?"라고 묻는데 글쎄 내가 보기에는 다 비슷비슷하다. 나 역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고 애지중지 그리던 닭을 세 마리나 도둑맞았다. 그런 일들 하나하나에 상처를 입고 마음에 두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나뿐이기 때문에 가급적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의 회복약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추억들을 쟁여놓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랜 시간을 견뎌내기 어렵다.
얼마 전에 영양제를 사러 약국에 갔다. 이제 베트남어를 조금 한다고는 하지만 누가 들어도 외국인이 하는 베트남어이고,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천천히 말해주세요"를 연발하는데, 그 약사는 너무나도 불친절하고 배려 없게 말을 했다. 도대체 "칼슘 있어요?"라는 질문에 그렇게 인상을 쓰면서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 칠 까닭이 뭐가 있단 말인가? 너무 답답해서 나 역시 "그래서 있냐고, 없냐고!" 버럭 화를 내니까 "없어!" 하고 들어가 버리길래 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내 베트남어가 부족한 탓인가 싶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굳이 그 불친절한 약사를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약국에 가서 똑같이 질문하자, 바로 눈치를 채고는 약국에 있는 여러 칼슘 제품들을 꺼내 보여줬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자 '1알에 300원'이라고 짧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준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 이거 10알 주세요"라고 친절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3분 전의 불쾌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더러운 기분을 마음에 잠시라도 담아둘 필요도 없었고, 그럴 틈도 없었다. 오히려 이전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후회가 들었던 내가 못 나게 느껴질 정도로 '역시 그 가게 약사가 이상한 거였어'라는 위안을 받았다.
엊그제 퇴근길에는 단골 빵 가게 사장님한테 설날 선물을 드리러 갔다. 하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그 앞을 기웃거리던 나를 수상하게 보던 옆집 사람이 나오더니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이 집에서 빵 팔던 이모, 집에 있나요?"라고 묻자, 거침없이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데 이번에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 이 사람은 나와 친한 빵집 사장님의 이웃 사람이다 - 다시 한번 천천히 물어보자 대충 "어떤 이모?"라고 묻길래, '빵 팔던 이모'라고 말하니까 여전히 싸가지없는 말투로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껏 사 온 선물은 어떻게든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이웃을 불러서는 이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이쯤 되면 경계를 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계속 알 수 없는 무례한 언행으로 나를 대하길래 이번에도 확 짜증이 나서 아무런 인사도 없이 뒤돌아 나왔다. 너무 화가 났다. 왜 불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짜증이 나야 하는 걸까?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집 아저씨의 아들이 강가에서 낚시하다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였다. 그 미소를 보니 순간 분노가 확 녹아버렸다. "아저씨 집에 있어?"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집에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사람들과는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불친절한 사람들은 불친절함으로 하여금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언어는 부수적인 수단일 뿐, 실제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역시 신뢰의 문제다.
비록 아저씨를 드리려고 산 선물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선물의 주인이 새로 정해졌다. 길고 좁은 길을 지나서 아저씨 댁으로 가니 손녀딸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바빠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나를 격하게 반겨주시면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데 - 반찬은 밥이랑 국 하나뿐이었다. 준비한 설날 선물을 건네드리자 너무 좋아하시면서 이따가 저녁에 전화할 테니 술 마시러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항상 아저씨랑 술 마실 때면 옆자리에 앉아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손녀딸도 연신 손을 흔들어주었다. 싸가지 없던 빵집 이웃 1명, 그리고 나를 너무 좋아하는 아저씨네 식구 3명. 내가 오늘 굳이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

베트남에서든, 한국에서든 인류애를 충전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혹은 극복하기에는 너무 지쳐버린) 커다란 장벽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베트남은 그저 겉돌고만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이 정말 착한지, 시골 사람들이라고 더 순수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불쾌한 일을 하나 겪으면 3분 뒤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나를 다독여주는 것을 보면 나는 이곳에서 지내는 게 맞는 것 같다.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상냥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 쓸 여력은 없다. 오늘 하루도 노기자카46의 <마음의 약(心の薬)>을 흥얼거려 본다. 에가오와 아이노 쇼호오센~ 민나오 시아와세니~ (미소는 사랑의 처방전~ 모두를 행복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