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지 않았는데 장마가 끝났다. - 첫 번째

기온은 상승하는데 나는 하강했다. 바람을 잔뜩 넣은 풍선을 놓쳐버린 모양새였다. 처음과 비슷한데 어쩐지 볼품없고, 다시 숨을 불어넣자니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상태. 차라리 터져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n년차의 흔한 권태로움- 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억울했다. 크로스핏 재등록 안내 문자가 쌓이고 일기장이 채워지지 않았다. 좁아진 마음에 무언가 더하지도, 덜어내지도 못하는 내가 미웠던 시간들.

길었던 고민이 무색하게 짧은 결심을 쥐고 어쨌든 끝냈다. 이렇게 싱거운 결말이라니. 특별함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각자의 퇴사 사유는 비슷하게 닮아있다.

인도에 간다. 배낭을 메고 마지막 출근을 했다. 친한 동료들이 ‘타시는 어울리는 곳을 향해 떠난다’고 한다. 동시에 ‘여자' ‘혼자' ‘인도’로 떠나는 나에게 우려와 걱정을 흠뻑 덮어씌우며 왜 하필 인도냐고 묻는다. 모험이 부족했다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서 있기 위해서라거나 피아를 살필 여유를 찾는다거나 그런 근사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좋아서..

어울리는 곳을 향해 떠나는 타시

어울리는 곳을 향해 떠나는 타시

나는 인도와 어울리나? 어떤 나라든 융화되는 외모를 가진 것 같다. 인도에서도 예외는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도 최북단이나 최동단의 외모를 가졌나 보다. 타시라는 이름도 몫을 더한다. (타시는 티베트 이름이다) ‘줄레- 녜 밍아 타시 인 레- 창 돈 레!’ ‘안녕하세요. 저는 타시예요. 맥주 마시자!’ 이 라다키 몇 마디에 나는 그들의 조카가 되고 언니가 된다. 앙모라는 미들네임도 얻었다. 짜이도 갠지스강만큼 마셨다. 자이푸르에서 만난 도미토리 룸메는 내가 미조람에서 온 줄 알았단다. 관광지에서 외국인 요금 내지 말라며 ‘나 미조람 사람이야’ 힌디어도 알려준다. 메 미조람 쎄 훈.

인도는 나와 어울리나? 첫 인도는 작년이었고, 석사 논문을 제출한 직후였다. 직장과 대학원과 공사모를 병행한 기특한 나를 북북 쓰다듬기 위함이었다. 2년 반 동안 사회공헌을 하는 나와 문학을 하는 나와 개발협력을 하는 나는 각각의 정체성을 놓칠세라 발버둥 쳤다. 나는 이 시기에 매일 길을 잃었다. 엉켜버린 20대는 나를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몰랐다. 논문을 다 쓰면 세상이 변하리라 믿었건만 세상은 그대로고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인도에 갔다. 인도는 내가 가장 반짝였던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만 같았다. 올해라고 다를 건 없다. n년차의 흔한 권태로움- 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억울하지만 한편으론 노력 없이 다시 반짝일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인도에 간다. 입자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굵은 먼지와 언제 버려졌을지 모를 쓰레기들, 뒤섞인 경적 소리, 의미 없는 차선 위 릭샤와 소들이 제법 그리웠다는 생각과 함께, 여전히 엉망진창인 나와 인도는 그럴듯한 화음을 이뤄낸다.

인도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모름지기 힌두교의 성지이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나 요가의 발상지인 리시케시에 가야 하겠지만 나의 1차 목적지는 맥그로드 간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들어선 곳이고 티베트 난민들이 정착한 곳이자 작년의 나는 가지 못했던, 내가 오래 그리워하던 곳이다.

지금도 왜 타시라는 이름을 쓰는지, 왜 티베트를 좋아하는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20살인가 21살에 티베트 언어 문화 수업을 들었는데요. 거기서 타시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티베트 사진을 보는데 알록달록한 깃발을 온 하늘에 꿰맨 모습이 참 예쁘더라고요. 그리고 환생 시스템이 신기했던 것 같기도 하고..’ 왜 티베트를 좋아하는지, 언제부터였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티베트를 좋아하는 건 이제 나에게 일차적 감정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가장 아래에 자리 잡힌 맥그로드 간즈에 왔다.

알록달록한 깃발: 룽따와 타르초

알록달록한 깃발: 룽따와 타르초

이곳의 ‘성수기’는 과연 언제일까. 해발고도 2,000m에 위치한 맥그로드 간즈는 추운 겨울과 비 오는 여름을 반복한다. 구름이 마구마구 피어오르는 맥그로드 간즈의 아침은 황홀하다. ‘나는 역시 날씨 요정이야!’ 싶다가도 오후 3시가 되면 쏟아지는 비에 정신을 못차린다. 더하여, 최악의 물갈이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맥그로드 간즈에 있다.

지난밤 바이든이 티베트 특별법에 서명했다. 노래는 그칠 줄 모르고, 사람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여 밤새 빙글빙글 춤을 춘다. 고요한 마음들이 뎅뎅 울린다.

맥그로드 간즈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을 만큼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길 바라왔는데, 아니었다. 나는 밤새 춤을 추는 마음을 결코 헤아리지 못할 테니까. 가본 적 없는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닿을 수 없을 거라서.

그냥 같이 춤을 추면 되는 거지

그냥 같이 춤을 추면 되는 거지

무력한 나는 테라스에 앉아 산에 걸려있는 구름과 흔들리는 타르초를 본다. 그리고 건너편 이웃들을 본다. 그들은 일요일에도 월요일에도 강아지를 북북 긁고, 아이들의 머리를 북북 빗긴다. 매일 식물을 닦는다. 그럼 나는 자주 감상에 빠지고 또 눈물을 흘린다. 여행을 망쳤다는 생각은 절대 아니고,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삶은 어떤 형태든 괜찮다. 정해진 이직처 없이 퇴사해도 괜찮고, 월요일 아침에 식물을 쓰다듬어도 괜찮다. 오후 3시부터 내리는 비에 강아지와 나뭇잎은 다시금 젖을테지만 화요일 아침에 닦아내면 된다.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이곳에서는 매일 비를 맞아도 좋다.

추신. 위험하다는 거 나도 잘 안다. 운이 좋아 무사히 다녀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글은 인도 여행 미화 혹은 추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던 그리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