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톱은 언제나 짧다.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해온 탓에 손톱을 항상 바짝 깎는다. 그런 손톱을 가진 이후로 겪는 어려움이란 맥주 캔 따는 게 좀 어려운 정도. 위생적으로 보여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항상 손톱을 짧게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종종 손톱을 물어 뜯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무도 나를 청결하다고 생각하겠지. 때로는 쏟아지는 업무를 마주한 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아 참, 손톱부터 깎아야겠다’ 하면서 일을 외면하기도 했다. 나의 손톱은 그런 의미다, 한가롭게 기타나 띵가 띵가 치면서 주어진 현실에서는 종종 도망쳐 버리기도 하는 불결함의 상징.
고된 모니터링 업무 뒤에 마시는 현장에서 마시는 맥주는 또 다른 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사업 이야기인지 인생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는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지구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맥주를 한 캔 두 캔 비워가다가 유난히 따지지 않는 맥주가 있어서 옆에 있는 아저씨한테 손톱이 짧아서 그러는데 이거 좀 따 달라고 부탁했더니 불쑥 내 손을 움켜 잡는다.
“너도 고생 많이 했나 보구나!”
제 아무리 이 나이에 고생 좀 했다고 한들 메콩 델타에서 한 평생 과수농사를 해온 아저씨만 하겠냐만, 어쩐지 나도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괜히 서글픈 표정으로 우선 고개부터 끄덕였다. 하지만 도대체 손톱이 짧아서 맥주 좀 못 따는 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고생이기는 하다)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변해버린 내 얼굴을 아저씨는 빤히 보다가 자신의 손톱을 보여주셨다. 짧은 손톱이었다. 기타 치기 딱 좋은.

“나도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 도와서 국수를 만들었어, 그때는 국수를 직접 다 손으로 뽑아서 만들었거든, 종일 쌀가루도 나르고 면도 치고 그랬지 . 그러다가 나중에는 공장에 들어가서 벽돌도 날라보고 얼음 공장에서도 일해봤어. 지금은 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농사 짓고 있는 거야. 그렇게 평생 살다보니 이제는 손톱이 길게 나지가 않아.”
아저씨에게 손톱은 고생의 상징이었다. 마치 더 이상 가난이 자라나지 않도록 종일 힘을 준 손가락 끝에는 손톱마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는 하염 없이 옛 생각을 떠올리면서 내 손을 만지작 거리셨다. 그러니 이내 손톱 아래 굳은살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이건 그냥 베짱이의 손가락일 뿐이에요. 지구 위의 구성원이라고 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 다양하고 그 안에는 미처 공감하기 힘든 순간들도 발생하고는 한다. 아마 아저씨도 돈 벌이도 되지 않는 행위 때문에 짧아진 손톱과 굳은살을 이해하시긴 어려울 것이다. 베짱이가 개미의 삶을 모르듯, 개미도 베짱이의 방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렇듯 불완전한 이해는 이내 오해가 되어버리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는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 오해의 과정에 우리는 제멋대로 공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공감이야말로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원동력이다. 이런 나에게 혹시 F냐고 물어본다면, 원래 베짱이가 포루투갈어로 gaFanhoto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