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이미 에세이 제출 마감일을 넘긴 후,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일일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님이 작은 교회를 열어 사역하고 계시는 곳이었는데, 차로 한 시간을 이동한 뒤에도 온갖 짐을 잔뜩 들고 제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을(제가 덩치가 조금 큰 편입니다) 10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봉사는 한 달 전 큰 화재로 집이 전부 불타 임시 숙소에 거주 중인 분들을 만나 뵙는 일정이었는데요, 전날 내린 비로 질퍽한 땅을 밟으며 "이런 데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던 중, 도착해서야 제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습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반쯤 잔치를 벌이며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어디 광고를 할 일도 아니지만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신실하지도 않고, 매주 교회를 나가는 간단한 것 조차 지키기 힘들어하지만 설문지 종교선택란에 기독교가 있으면 체크하는, 소위 ‘행정적인 명목으로서의’ 크리스천입니다 (친구가 가르쳐준, 제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아, 제가 취하면 그렇게 CCM을 틀고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酒님과 함께 할 때 主님을 찾는다니 아주 못된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은 이유는 사실 이번 봉사를 주관한 단체가 제가 다니는 교회였고, 저는 교회 청년부 소속으로 참가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는 매달 다양한 지역으로 일일 봉사를 다녀오는데, 보통 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돌아오는 일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봉사는 올해 마지막 일정이기도 하고, 비교적 멀지 않은 곳이라 청년부에서도 함께 참여하기로 하여 약 스무 명의 친구들이 다른 봉사자들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봉사라고 해도 저희가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모인 아이들과 놀아주고, 어르신들이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며, 힘 좀 쓰는 청년들은 짐을 나르고, 그런 정도입니다. 청년부 연령대가 많게는 (슬프게도 제가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빨리 졸업해야 하는데) 30대 중반부터 어리게는 19살까지 다양했는데, 다들 어찌할 줄 몰라 멀뚱멀뚱 서 있다 보니 어르신들께서 안쓰럽게, 혹은 답답하게 보셨는지 이것저것 할 일을 던져주셨습니다. 덕분에 하루를 정신없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아이들 만들어 줄 풍선을 불고 접었고 (저도 한번 해봤는데 어떻게 하는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청소를 하고, 밥을 운반했습니다. 물론 정말 재밌고 확실하게 본인의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행사 진행 경험이 많아 현지 아이들을 전부 모아 오전 내내 게임을 진행했고, 한 친구는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현지 청년들과 계속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군대 이발병 출신인 한 친구는 정말 쉴 틈 없이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주었고 또 한 친구는 물리치료사인데 아예 치료용 침대까지 집에서 가져와 서른 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저요? 저는 물리치료사 친구를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기구를 정리하고, 침대를 닦고, 환자들을 줄 세웠습니다. 그 방이 선풍기가 있어서 시원했거든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밀려오던 환자들도 끊긴 점심 무렵, 간이 치료실로 변한 방에 서서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고 잠시 고민해 보았습니다. 첫 봉사활동을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에 쓸 ‘한 줄’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던 시기였죠. 그때는 국제개발협력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봉사활동의 의미 역시 그저 이력서 한 줄 이상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 없이 파키스탄으로 떠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국제개발협력을 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한 이후로는 자진해서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횟수가 (국내든 국외든)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봉사에 쓸 심적, 물질적, 시간적 여유도 줄어들었습니다. 사업 때문에 단기로 여러 해외 출장도 잦아지면서, 어디 한곳에 머물며 봉사 활동 거리를 찾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미 매일 유사한 일을 하고 있으니 추가적인 봉사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전문성을 살려 더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도 하게 되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핑계인거죠. 사실 그냥 게으른 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식재료를 얻고 머리를 자르기 위해 방문한 한 젊은 여성입니다. 한 살도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와서 줄을 서 있었는데, 아기를 좋아하는 청년 몇 명이 다가가 아기를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여성이 아기를 내어주었고, 특히 현지어에 능숙한 친구들이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온 사실. 아이는 이제 두 달이 막 지났고 여성은 16살, 아빠는 모른답니다. 같이 국제보건을 하고, 또 같이 봉사활동을 나온 (사실 이 친구가 부추겨서 저도 나갔습니다)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리는 나름 전문가로서 보건사업을 펼치고, 또 나름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를 보게 됐으니까요.
사실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저는 순간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 직업은 소위 말하는 좋은 일 (우리가 항상 답답해하는 ‘좋은 일 하시네요’ 에 나오는) 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눈 앞에 힘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아니 모른 척 하고 지냈다는게 드러났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만나 뵙고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어컨 잘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에 의존해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맞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다섯시가 조금 안되어 봉사를 끝내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헤어지기 아쉬워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 가서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누군가 한마디 하더라구요.
“이번에 너무 좋았다, 다음에 또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