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니어 에세이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 생각했다. 국제개발협력이 짝사랑 같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기억하며, 나는 국제개발협력이 첫사랑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그 마음을 원동력 삼아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우리에게, 그 첫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길 바라며 이 글을 바칩니다 **

에세이를 무겁게 쓰고 싶지 않았다. 주니어 에세이란 무릇,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포부를 밝히는 공간이 되거나, 업계 주니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안한 마음에 대해 공감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국제개발협력을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20살의 나는 지금의 내가 국제개발협력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업계에 있는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네팔은 첫사랑을 싣고

20살에 떠난 첫 해외봉사의 목적지는 네팔이었다. 네팔 대지진 이후 무너진 초등학교를 재건하기 위해 종교단체의 봉사에 함께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참여한 해외봉사는 내게 무거운 마음을 안겼다. 3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와 리코더를 가르치고, 벽화를 칠하는 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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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은 없었다. 컴퓨터를 조립해서 아이들이 쓸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조금 뿌듯해 했으며, 리코더 운지법을 가르치며 살짝 답답했다. 질긴 닭날개를 점심으로 먹다가 절반 정도를 남겼다.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에 공감하며 캐시미어를 얼마나 사서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가장 고민했다.

그렇게 1주를 보냈다. 여지없이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벽화를 칠하며 하루를 보내던 날이었다.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주변이 붉은 빛으로 물들고 주위 사람들이 겉옷을 하나 둘 챙겨입고 벽돌을 의자삼아 걸터앉았다. 나도 조금 더 두툼한 벽돌을 하나 발견하고 주저앉았고, 가쁜 숨을 조금씩 내쉬었다. 네팔의 겨울은 한국보다 춥지 않았지만, 하루종일 초등학교 벽돌에 페인트칠을 하고 난 뒤 땀이 식어 걸리는 감기가 반갑지 않았다.

모두가 주저앉아 쉬고 있을 때 힘든 하루를 추억하자며 싱가폴 친구 하나가 메고 온 기타를 꺼내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현지 선생님 한 분이 낡은 우쿨렐레 하나를 메고 옆에 와 앉더니 천천히 재즈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여 그들의 연주를 지켜보았고 나 또한 눈을 뗄 수 없었다.

누군가 국제개발협력을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라고 했던가, 내겐 그 상황이 국제개발협력 그 자체로 다가왔다. 현지인과 라포를 형성하고, 감정이 통해 음악으로 하나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국제개발협력과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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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남은 기간은 아이들과 마주하는 시간들을 즐기며 보냈다. 바보처럼 보이는 선생님을 좋아한단 말에 장난기를 담아 아이들을 대했고 영혼을 담아 벽화를 그렸다. 그 뒤로 나는 다짐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을 돕는 삶을 살아가자고.

첫사랑은 보통 이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