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던 때다. 반년간 주변 지인들과 기존 파트너들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받아 가며 바쁘게 일했더니, 조금 지치기 시작했던 나는 편도 티켓을 끊고 제주도로 떠났다. 당시 유행했던 한 달 살기의 형태가 아니라 며칠 또는 1주일 간격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옮겨 다니며 지냈고, 거의 2달을 눌러앉아 방랑생활을 즐겼다.
묵었던 숙소만 열 곳이 넘는데, 매일 새로운 사람이 들고 나는 게스트하우스 특성 상,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그룹이 모여 말을 섞었다. 여행자들끼리 모여 하는 이야깃거리는 보통 주제가 한정적이다. 제주도에는 왜 왔는지, 어제는 뭐 했고 내일은 뭐 할지, 어디가 좋았고 맛집은 뭐가 있었는지 등 서로의 제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한 사이클 돌고 나면 어색한 침묵이 감돌기 마련. 그 즈음이 내 기준 가장 까다로운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여행객 대부분은 변호사, 개발자, 디자이너 등 누구라도 알만한 직업을 대거나, S사니, L사니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직장 이름으로 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을 쉬고 있는 장기 여행객들이라도 본인의 업을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와 우리 업은 다르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초반에는 멋모르고 ‘어.. 저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는데요’로 시작해서, ‘그게 뭐냐면요, 개발도상국에.. 아, 개발도상국이 뭐냐고요? 그.. 아프리카나 동남아 쪽 나라들 있잖아요.. 아, 후진국.. 요즘은 그런 표현은 안쓰는데.. 어쨌든 비슷한 맥락인데요.. 그래서..’ 이런 답 없는 대화를 몇 번이나 해야 했다. 방랑 1달 차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던지기 시작했다.
ㅡ 국제개발협력 컨설턴트예요.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구요.

이때마다 상대방의 리액션은 세 가지 정도로 구분되곤 했다. 첫 번째는 바로 그게 뭐냐며 되묻는 경우. 이런 케이스는 오히려 쉽다. 나름대로 설명하면 되는데, 보통 다음 두 가지 반응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어디서 좀 들어봤고 뭘 좀 알고 있어서, KOTRA나 선교활동 등과 연결하여 추측하는 경우. 이런 부류는 조금 까다롭다. 잘못한 정보를 갖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차마 되묻진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며 화제를 돌리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부연 설명이 필요 없어 넘어가도 되긴 하지만, 어쩐지 찝찝한 마음을 안고 후퇴해야 한다. 관심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떠들 순 없으니까.
결론적으로는 제주도에서 만난 어떤 사람도 내 업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매번 가상 인터뷰를 시뮬레이션하여 다양한 대답을 던져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하긴 내가 뭐 하며 밥 벌어 먹고사는지, 가족도 가까운 친구들도 여전히 잘 모르는 눈치인데, 낯선 사람에게 뭘 기대하겠나. 도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싶다. 여기에 기껏 설명했는데 ‘좋은 일 하시네요’가 날아오면, ‘좋은 일 하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구요’로 시작되는 구구절절한 변명 아닌 변명이 이어지기도 한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 있나요? (그쪽은 나쁜 일 하세요?)’ 하며 시비를 털기도 했다. (그날의 저를 만나신 숙박객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여기에 관심이 좀 있거나 어디서 들어본 게 있는 사람들이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우리나라 세금을 왜 다른 나라에 쓰는지,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돕는지, 그래서 무슨 이득이 돌아오는지, 기부금이든 세금이든 남 돕는다는 명목으로 다 허투루 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등. 업계 10년 차가 되었어도 잘 모르는 것 천진데, 어쩌다 한번 끈질긴 사람을 만날 때면 꼭 이 업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각기 다른 곳에서 비슷한 질문에 응대했을 동료들을 떠올려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직업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 경험들이 있으리라. 주변 동료 중에는 상대방의 연령대와 배경에 맞춰서 답변을 커스터 마이징 하는 노하우를 갖춘 사람도 있고, 혹은 ‘아 그냥 회사다녀요’ 하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내공을 갖게 된)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업이 대중적이진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언젠가는 국제개발협력 컨설턴트라는 직업도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는 직업이 될까? 차마 곧 그런 날이 오리라고 말하긴 뭐하다. 언제 한번 ‘우리 업 설명하기 콘테스트’라도 열어봐야겠다. 최적의 대답을 준비해두신 분이 있다면 부디 구독 평에 남겨주시길 바란다. 아직도 무슨 일 하냐는 질문에 미세한 동공지진이 오는 나에게 분명 누군가는 도움을 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