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꿈을 꾸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업 현장에서 이해관계자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일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언어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날만큼은 통번역 직원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하고 싶던 비유를 건네며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직접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 희열에 도취된 찰나 눈을 떴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금 그 꿈을 꾸고 싶어서 잠을 보챘다.

두 번째 꿈을 꾸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하던 웨일스 출신 락밴드의 멤버와 같은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하는데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랫동안 골방에 쳐 박혀서 곰팡이와 먼지를 들이마시며 연습해왔던 그들의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데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내가 누르는 음표 하나 하나를 이해하고 있었고 우리는 마치 오랜 전부터 같이 연주를 해오던 사이 같았다. 그런 기쁨에 만끽하는 찰나 눈을 떴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금 그 꿈을 꾸고 싶어서 잠을 보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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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꿈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걷는 꿈이었다. 아무런 시간의 중첩도 없는 우리 둘이 어째서 이 학교를 함께 거닐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은 동요하지 않았고 차분한 호흡에 우리는 발걸음을 맞추어 나갔다. 홀로 간직해온 마음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텐데, 마치 당신은 모든 것을 아는 표정이라서 나는 안심했다. 그 사람을 생각해온 시간만큼 꿈결은 이어지는 걸까?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나는 현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찰나 눈을 떴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금 그 꿈을 꾸고 싶었지만 어느새 출근 시간이었다.

일본의 대문호로 손꼽히는 작가 나츠메 소세끼의 작품 가운데 <몽십야(夢十夜)>라는 단편 모음집이 있다.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열 가지 꿈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그 단편 소설 내용에 비하면 턱없이 수준 낮은 개꿈이지만, 하룻밤 사이에 세 가지의 꿈을 꾼 그 날의 기억만큼은 소세끼 선생님도 ‘좋아요’ 정도는 눌러주고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채 일곱시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내 꿈들을 꾸었고, 그것들은 모두 오랫동안 나의 꿈이기도 하였다.

얼마 전에 개발협력활동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던 중에 질문 하나를 받았다. 혹시 딴 생각이 들지는 않느냐고.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개발협력은 나의 꿈이 아니다. 당장 내 앞가림도 못 하고 있는데, 빈곤 종식이라든가 인류의 평화라든가 지구적 관점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면 너무 주제 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물론 사회적 사명감과 개인적 욕망이 일치 될 필요는 없지만, 때로 개발협력판은 개인 저마다 갖고 있는 우주를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워 보인다.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더 공감해야 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마치 우리는 또 다른 꿈이 있으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봤지?, 나는 하루에 꿈을 세 번 꾸는 사람이다. 두 번 다시 이 일을 하지 않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도 있다.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동료들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국제개발협력을 떠났다고 해도,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꿈이 있기에 나는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첫 번째 꿈을 꾸고 두번째 꿈을 꾸었듯이, 우리는 잠시 꿈을 옮겨갔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또 어떤 꿈을 꿀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의 꿈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야 말로 꿈 같은 일이고, 나는 아직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꿈도 만나보고 싶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지만, 음악을 하던 사람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해왔고, 이 모든 것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겨버리게 만드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기도 하다. 이런 몽십야 같은 삶을 산다면, 나는 국제개발협력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꿈에서 깨어났을 때, 몇 번이고 다시 꿈을 꾸기 위해서 잠을 재촉했던 내 자신이 좋다. 분명 나는 행복한 꿈만이 아니라 슬프고 힘든 꿈을 꾸었을 때에도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몇 번이고 다시 잠들 수 있기 때문에 설령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지금의 꿈이 부서지고 나를 무너트리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다시 뒤척이면서 잠을 청하면 또 다른 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내 꿈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