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변의 변화가 많았다. 회사를 떠나 다시 프리랜서가 되면서, 이제껏 미뤄뒀던 치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 병원 투어를 다녔다. 주 3회 헬스장에 가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고, 최근엔 건강 상의 이유로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총선에 앞서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사전 투표도 하고, 집 근처 미용실에 가서 오랜만에 머리도 다듬었다. 오늘 아침엔 앱으로 맡겼던 세탁물과 구독 중인 채소들이 집 앞에 배송됐다. 아니, 아무리 에세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일기를 뭐 하러 늘어놓느냐고?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안물안궁? 그러게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매일 지내다 보니, 문득 DR콩고 킨샤사에서 근무하던 때의 생각이 나서 그렇다.
'길에서 혼자 걸어 다니시면 안 돼요. 대낮에 큰길에서도 안 됩니다.' 킨샤사에 처음 도착해 받았던 안전교육의 첫머리다. 여자 혼자 걸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낮에 큰 길가에서도 안된다니, 도대체 여기는 어떤 동네인가 싶었다. 당시 DR콩고는 선거 준비가 덜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대통령 선거가 1년 이상 연기되고 있었다. 15년 이상 집권한 대통령이 임기가 끝났음에도 근거 없이 버티고 있으니, 사회는 어지러웠고 현지 생활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현지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삶도 쉽지 않았다. 외국인 대상 물가는 어마어마한 수준이고, 수도의 도심 한복판에 살아도 생활 인프라 수준은 매우 낮았다. 길거리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생계형 범죄가 만연했다.
그러니 킨샤사에 근무하는 1년 반의 짧은 기간 동안, 몇 보나 걸었을까. 최대한 안전한 숙소를 구하느라, 자동차로 철문을 3개 지나고 현관부터 내 방문까지 자물쇠를 3번이나 열어야 했다. 건물 앞에 아이들이 뛰놀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길거리 음식을 팔았지만, 혼자서 산책 한번 할 수 없었다. 밖에 한번 나가려면 무조건 현지인 기사님과 동행하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꼈다. 어쩌다 한번 길을 걷는 날이면, 캣콜링으로 귀 따갑게 희롱을 당해 오히려 질려버리기도 했다. 믿고 찾아갈 병원이 마땅치 않았기에, 어느 때보다 아프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지냈다. 레바논 사람들이 하는 미용실이 있다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머리를 끊임없이 길렀다. 세탁기가 고장 난 날,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손빨래 하느라 손이 다 부르튼 날도 있었다. 연말에는 콩고 정부가 인터넷을 예고 없이 끊어버려서, 가족에게도 안부 인사 한번 하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사흘을 보낸 적도 있었다. 몸이 상하게 맥주와 와인으로 겨우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와 외로움이 나를 뒤덮던 시기였다.

(킨샤사 일상의 단편조각들. 수많은 맥주병 뚜껑, 항상 타고다녔던 사륜구동, 재외선거 인증)
개발도상국 파견 생활이 힘들다 힘들다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까지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분명 지금은 즐거운 기억으로 미화되어 있어, 막상 적어놓고 보니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실제로 지금 쓰는 집안일 스킬의 대부분은 콩고에서 익힌 것이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어느 때보다도 끈끈한 우정을 나눴다. 놀랍게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참 힘들었다. 많이 울었다. 여러 밤을 지새웠다. 안 그래도 일도 많고 괴로운데, 생활까지 이렇게 힘들다니. 파견을 나오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집에는 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책임감에 짓눌려 차마 돌아간다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힘든 환경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정말 그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무엇이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해있던 그때의 나에게 조금은 미안하다. 책임감도, 사명도, 배움과 성장도 좋지만, 그때 내 마음과 몸도 좀 챙겼으면 좋았을 텐데. 1년 반 파견이 끝난 후,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서야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이었으니, 여전히 후회는 없다. 힘들었던 시간을 잘 버텨준 나에게 고마울 뿐.

이렇게 서울에서 인프라와 안전을 누리다가 문득 이렇게 그때를 떠올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험지에서 고된 생활을 하고 있을 우리 업계의 동료들을 생각한다. 물론 낭만과 배움, 성장이 있겠지만, 일상에서의 고충과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고독이 얼마나 클까. 멀리서나마 그대들의 안녕을 바란다. 일에 쏟는 정성만큼 내 자신에게도 좋은 음식을 먹이고 있길. 따뜻하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내고 있길.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히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