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늦은 3월이라면 벚꽃을 만끽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고, 한국인과 결혼한 배우자에게 한국은 앞으로 갈 기회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니까. 배우자는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 출신이 아니었기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비자를 신청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여행 경비를 환전을 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며 인생에 단 한 번 있을 여행을 준비해 갔다. 벚꽃이라면 플라스틱 조화로 밖에 본 적 없는, 초밥이라면 이웃 도시에서 파는 대형 마트 포장 초밥 밖에 먹어 본 적 없는 사람이 꿈꾸는 여행이란 설렘과 기대감으로 반죽해서 만든 달콤함이었다. 이래서 허니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깊어 갈 무렵, 배우자의 비자는 반려되었다.
첫 파견지는 미얀마였다. 비록 1년이 안 되는 국제개발협력 파견 찍먹이었지만 당분간 내 밥벌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후 파견국가가 바뀌어도 미얀마는 늘 나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친한 대학교 후배가 결혼을 해서 남편과 그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그녀는 결코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축하를 더 건네었다. 하지만 몇 년 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잘 지냈다. 나는 그녀가 못 지내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너무나도 잘 지냈다.
오지랖 부리는 것을 좋아하고 매사에 훈수 두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세상이란 알아갈수록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곳이었다. 하루 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내 모습은 이미 이 곳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억지로 더 웃고 일부러 더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으라고 할수록 불행은 보다 선명하게 각인된다. 왜 나는 내 탓이 아닌 일로 미안해야 하는 걸까? 아무도 나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았지만 나는 왜 사과를 하고 싶은 걸까? 자꾸 내가 뭐라도 되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 같았고, 그 부채의식이 지금의 나를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의 사정에 빗겨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특권이다. 물론 이 특권이 곧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것뿐인데 이런 나에게 특권이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굴레인지. 이 특권을 버리려고 하는 것 또한 특권의 작용이 되어버리는 역학 구조 속에서 아직까지 나는 특권을 인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 찾지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입다물고 있다. 누군가의 용서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개발협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SDGs는 무엇인지, ESG는 왜 챙겨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이 이것 자체가 이 활동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그저 돕고 싶으니까, 아니면 종교적 사명감이 충만하니까, 누군가는 어릴 적 경험해본 짧은 기억이 이 길로 인도했을 수도 있고, 이 분야를 공부해 왔기 때문이든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든 직업을 구하고 일하는 데에 있어서 이유가 무엇인들 아무 상관은 없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계속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좀 더 찾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가끔씩은 딱딱한 이론이나 행정은 잠시 책상 옆으로 제쳐두고 지금 감각하는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다. 모두가 평온하게 살아가야 마땅한 이 땅 위에 나 혼자 아프지 않아서 나는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