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활동가 11년차, 친구들이 이제 슬슬 내 밥벌이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급여는 모두 국가가 지급했다고 말하면 다들 이내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 동시에 자신의 세금이 나에게 쓰일 줄은 몰랐다는 배신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도 국제개발협력이 무엇인지, 왜 세금의 일부가 ODA 재원으로 사용되는지 설명을 하면 친구들은 이내 혹은 마치 못 해 고개를 끄덕인다. 운 좋게 ODA 사업을 계속 수행하는 덕분에 비록 액수는 적을지 언정 안정적인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면 너의 급여는 애국의 대가냐며.

얼마 전 다른 국가로 출장을 갔다가 그 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김칩 보건의료 전문 필자인 마샬님을 만났다. 파견된 국가도 다르고 활동 분야도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일하고 있는 기관의 성격이 달랐다. 나는 ODA 재원으로 운영되는 한국 NGO에서, 그는 외국에서 설립된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서 나눈 이야기는 대체로 한국과 일본 아이돌의 미래였지만, (술자리 대화 주제가 떨어지면 쓸데없이 진지해지듯이) 이윽고 우리는 과연 국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지 고민했다.

내가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 국가는 일당 정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을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첨예하게 편성되어 있는데, 사회/경제/문화 등 많은 분야에 산하 기구들이 존재한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직은 청년연맹이다. 단순 청년의 연합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나라와 당, 그리고 인민을 위해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 소위 말하면 애국 단체이다. 내가 이들을 좋아하는 까닭은 청년연맹과 어울리면 조금이라도 나도 어려 보일 수 있다는 기대이기도 하지만, NGO에서 일하면서 평생 ‘희생’, ‘봉사’, ‘헌신’이라는 단어에 신물을 느낀 나로 하여금 어쩜 이들은 이렇게 충성스러울 수 있는지 의문과 호기심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들의 애국의 대가는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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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국제개발협력을 하기 전에는 청년 조직에 있었다. 지금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십여 년 전에는 더욱 활발하게 지역별로 청년회가 존재했다.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고, 우리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봉사하는 다소 정치적인 조직이었다. 이 땅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딱히 애국을 하고 있다거나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주어진 문제를 계속 들추어내고 해결을 촉구했기 때문에 정권 성향에 상관없이 늘 정부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내가 생각하는 청년의 가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곳의 청년연맹을 볼 때면 십여 년 전 청년회 활동을 하던 내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는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불타올랐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려고 했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뛰어들려고 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우리의 활동이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잘못된 구조 속에서 당장 신음하는 사람들을 꺼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청년회 활동과 이 곳의 청년연맹의 활동에는 분명한 차이는 있겠지만, 각자가 품은 마음의 결은 같은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애국이라면 우리도 애국이고, 우리가 진보적이었다면 그들도 진보적일 것이다. 왜냐면 그게 청년이니까.

파견 현장에 오래 지내다 보면 가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지 잊게 된다. 내가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데에는 수백가지의 이유가 있고, 그 중 하나는 – 순위만 남들하고 다를 뿐 분명히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꼭 한국의 재원을 받아야만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애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애국이 되고, 때로는 애국이라고 생각한 것이 반사회적 활동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국제개발협력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한다는 착각, 때로 그 착각은 더 큰 뜻을 품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