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양이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총 두 마리의 귀염둥이들과 같이 산다. 고양이 이름은 레오, 강아지는 덕구다. 이 둘은 대략 5살, 8살 정도 되었는데, 올해 나의 결혼으로 예정에 없던 형제가 생긴 애들이다. 둘 다 너무 귀여워서 한껏 자랑을 하고 싶으나 한 번에 다 보여주면 재미없으니 오늘은 레오 이야기만 하려 한다.

우리 레오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부터 나와 함께 했다. 처음 만났을 땐 세상에 나온 지 4주 정도 된 아깽이 였는데, 길에서 차에 치일 뻔한 녀석을 누군가(레오를 구해주신 분이니 이하 ‘천사’라 부르겠음) 데려와 임시보호를 하던 중이었다. 천사는 당시 김칩의 에디터와 친하던 분이었는데 마침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계셨다. 당시 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었다. 이유는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해외 나갈 일도 거의 끊겼을 때라 1인 가구의 삶이 꽤나 건조해서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그걸 알고 있던 김칩 에디터가 천사와 날 연결해준 덕분에 고양이와 살아본 적이 없던 난 열흘 정도 가열차게 고양이에 대해 공부한 후 레오를 우리 집에 맞이할 수 있었다.

레오는 나의 성 ‘오’를 붙이면 오레오가 된다. 마침 검정, 갈색, 흰색이 섞인 녀석이라 과자 오레오 같기도 하다. 오레오라는 어감도 좋고 레오의 인상하고도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같이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오레오라고 이름지었다. 오래오래 오레오.
레오는 정말 귀엽다. 레오 엄마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 귀여웠을 거다. 왜냐하면 레오는 정말 귀엽기 때문이다. 무던한 성격의 레오는 밥도 잘먹고 똥도 잘 싼다. 간식도 안 가리고 잘 먹고, 애교도 많고 낯도 안 가린다. 가족은 물론 가스 검침원이나 수리 기사님 같은 분들이 집에 오셔도 그 자리에서 홀라당발라당 배를 뒤집어 깐다. 그럴 때마다 ‘저거저거 고양이 아닌거 아니야?’ 싶지만, 사실 레오는 매우 고양이스럽다. 왜냐하면 귀엽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자취 생활을 하며 사실상 1인 가구로 20년 정도를 혼자 살다보니 함께 사는 삶이 생경해진 내게 레오는 큰 자극이었다. 나 외의 큰 덩어리가 집안을 쏘다니는 것도 새롭고, 무엇보다 나와 비교되는 점이 많은 생명체라는 것이 크다. 이른바 ‘고양이스러움’. 레오가 보여주는 고양이의 특성과 나를 비교하는 건 꽤 재밌는 일이다. 레오가 보여주는 고양이스러움은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레오는 거리를 지킨다. 내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데,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이 편안한 만큼만 다가온다. 좋아한다고 과하게 붙어있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손을 내밀면 코로 냄새만 대충 훑고 가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털을 고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내가 회의 정리 때문에 바빠서 신경을 못 쓰고 있을 때 불쑥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나와 비교하면 레오는 부드러운 굴곡선 같다. 양탄자 같은 친밀함이랄까. 레오 덕분에 친밀함은 많은 시간을 붙어 있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가 편안한 타이밍을 존중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양이는 자주 울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레오도 말 대신 행동으로 분명하게 신호를 보낸다. 밥그릇이 비거나 배가 고프면 그냥 앞에 앉아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느라 자기와 놀아주지 않으면, 폴짝 책상 위로 뛰어 올라와 키보드에 턱을 괴고 식빵을 굽는다. 직접 말하지 않지만, 해석하기 어렵지 않다. ‘목소리를 냅시다’, ‘자기 주장을 합시다’ 라며 주변을 독려하는 것이 의사표현이라 생각했던 내게 레오는 조직, 공동체, 생태계 속에서 말 대신 신호를 보내는 조용한 다수가 있음을 알게 한다. 소리가 없다고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다. 들으려는 마음이 있어야 메시지로 보이는 것이지.

레오는 늘 자기 속도로 살아간다. 난 매우 저녁형 인간에 속하는데, 한참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광풍이 불던 당시 아침형이 되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게으르고 나태하다며 자책하고 원망했었다. 근데 레오는 졸리면 잔다. 심심하면 논다. 물론 무언가를 더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혹은 그렇게 해도 자기를 책임질 수 있는 운명이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살아도 레오는 나보다 더 많이 사랑받는다. 그리고 행복해보인다.
그리고 레오는 절대 자기 리듬을 타협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한다면 코로 사람의 손을 툭 건드리고, 원하지 않으면 그냥 등을 돌린다. 눈치가 없다기보다 ‘불필요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페이스를 정확히 알고, 지켜내는 능력이 있다. 남의 속도에 맞추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지만, 끝없이 맞추기만 하는 삶은 오래 가기 어렵지 않을까? 내 속도를 지키며 다른 이와 발 맞춰 가는 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길 아닐까.

레오는 관찰을 잘 한다. 레오는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은폐, 엄폐 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상황을 관찰한다. 물론 낯선 사람들이 자주 오고, 만나는 모든 두 발로 다니는 큰 고양이들이 자기를 이뻐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신속하게 배를 뒤집어 까지만, 그래도 일단 관찰을 한다. 어떤 상황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 전까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다. 출장을 다니다 간혹 관찰도 하기 전에 이미 판단을 내리고 현장에 들어가는 전문가라 불리우는 사람들을 볼 때 레오가 생각난다. 물론 익숙한 현장이라고 예단과 선입견을 갖고 현장에 접근하는 나를 종종 마주할 때도 레오가 생각난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솔루션을 꺼내들고,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문제 정의’를 끝내버렸던 못난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