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감정적이다”라는 말보다는 “이성적이다”라는 평가를 선호한다. 감정은 침착하지 못한 나의 어리숙함의 결과인 것 같고, 혼란의 순간 속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은 우리가 받들어야 하는 한 줄기 빛을 발하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그런 까닭에 ‘감정적으로 일한다’라는 말은 어디선가 ‘최악의 직장 동료/상사’ 순위를 뽑는다면 7-8위 정도에는 들지 않을까 싶을 만큼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일정한 기준 없이 기분대로 판단하고, 정해진 규정을 멋대로 해석해서 적용하고, 혹은 동료나 이해관계자를 편파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감정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니까 명확하지 않은 인상을 남겨주고, 그로 인해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혼선이 빚어진다.
하지만 나는 감정적으로 일한다. 나에게 감정은 자연스러운 기분이고 그로 인한 판단으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성적인 관계라니. 뭔가 계산적이고 다른 어떤 것보다 득실을 따져가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느낌이지 않나? 태어난 순간 가장 솔직하도록 만들어진 탓에 그토록 울음부터 터트린 우리라는 생명체는 감정 없이 이 낯설고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아갈 수 없다고 공표했다. 그러니까 웃고 싶을 때는 웃고 달아나고 싶을 때에는 달아나야 한다고 감정은 말한다. 감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며 관계를 형성하고 일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나침반이다.
감정은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늘 변한다. 세상을 등질 것처럼 비장했던 반역(叛逆) 같은 사랑을 맹세했던 그날의 약속도 어느새 유치한 지난 추억으로 여겨지며 스스로의 선택을 부정한다. 늘 그렇듯이 변덕스럽게도 감정이 변한 것이다. 하물며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라고 해서 그러지 않을 리는 없다. 파견 첫날 나를 챙겨주던 동료도, 존경을 마다하지 않던 대표님도, 함께 술잔을 나누며 협력을 다지던 파트너 기관 사람도. 한결같은 마음을 기대했던 우리의 관계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해가며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체로 우리는 그 타인을 원망하며 ‘나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신이 날 속였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추스른다. 하지만 그들이 속인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속은 것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정적이니까.
나는 정말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파트너 기관 사람이 있다. 함께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인간적으로 그를 너무나도 싫어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지만, 그가 지옥에 갈 수 있다면 1초 정도 신을 믿어볼 의향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파트너십이고 거버넌스라고 포장하기도 하지만 된장찌개 속 생강에 뭉쳐져 있는 된장 덩어리만큼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렇다고 해서 면전에 당신이 싫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감정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고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역시 감정의 판단대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일 테니까.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정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모든 경험에 대한 빅데이터이다. ‘쎄함’이라는 감정의 사이렌은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그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 참여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 사업을 구성한다든가, 사업의 논리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쉽게만 가려고 하는 태도는 의아함에서 실망감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체념과 경멸로 이끌었다. 이런 감정을 품는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나 자신을 다잡는 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관계 속에서 내 감정을 배제하고 싶지 않다.
어느새 AI의 도움 없이는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커져 버린 21세기의 노동자에게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증거이다. 나는 기계처럼 일하고 싶지 않다. 변덕이라고 할지라도 내 마음은 쉽게 뜨거워지기도, 때로는 매섭게 차가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개발협력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사업 속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PDM처럼 논리적으로만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비논리의 영역을 이성적으로만 풀어가려는 것만큼 자명한 실패는 없다. 나는 감정적으로 일한다. 이것은 각각의 활동과 활동 사이에, 사업계획서의 문단과 문단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여백 속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다. 나는 이것을 인간미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