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부터였으니, 공적인사적모임에서 커피챗 서비스를 제공한지 이제 반년이 되었다. 초 초반 러쉬기간이 끝나고도 드문드문이지만 꾸준히 신청이 이어져, 벌써 50명 넘는 사람들이 커피챗을 거쳐갔다. 나는 평일 한낮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프리랜서 컨설턴트인 만큼, 공사모 멤버 중에서는 최다 횟수로 커피챗을 소화하고 있다. (참고로 2위는 핑키님으로, 공사모의 대표 프리랜서인 우리 둘이 절반 이상의 커피챗을 담당해왔다.)

[공사모 커피챗 신청링크: https://whattime.co.kr/0044moim]

[공사모 커피챗 신청링크: https://whattime.co.kr/0044moim]

커피챗 주제는 오픈해서 열어두었지만, 가장 많이 접수되는 주제는 커리어 상담이다. 직장 선택, 이직처 고민, 대학원 진학, 봉사단 파견 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의 활동가와 화면 건너에서 만났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부터 계약 종료 후를 고민하는 파견직 활동가,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고민하던 아기 엄마까지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사연을 들었다. 연차와 위치가 다르지만 커리어 개발이 막막하다는 고민만큼은 모두가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업계와 일자리 생태계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사실 처음 커피챗을 나가기 시작할 때 부담이 상당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나는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시작해서 해당 조직을 7년동안 퇴사 없이 장기 근속했고 이후에도 또 다른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던, 그야말로 개발 컨설턴트 외길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들 한번은 해봤다는 해외봉사단 경험도 없고, NGO에 몸 담아 본 적도 없다. KOICA 사무소 파견 경험도, 국제기구 근무 경험도 없다. 이렇게 한 길만 파온 내가 누군가의 커리어에 대해, 특히 백만개의 커리어 패스가 있는 우리 업계에서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그렇게 처음엔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간채로 커피챗을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커피챗이 시작되고 상대방의 눈을 마주하니 이제까지의 긴장이 굉장히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의 작은 경험, 편협한 생각, 좁은 지식을 전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첫 순간 깨달았다. 누구보다 긴장했고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컴컴한 망망대해에서 혼자 배를 타고 떠내려가던 사람.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렇게 가도 되는지 알지 못한 채, 누구에게 이 어둠을 털어놓지도 못했던 사람. 그렇게 떠내려가다 겨우 나라는 사람을 하나 만난 것이다.

(출처: pexels.com)

(출처: pexels.com)

고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은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눈앞에 꽃이 피어도 그 생각만 날 정도로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놔도,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것 같지 않고,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 막막함도 겪어봐서 안다. 속 편하게 한 길만 끈덕지게 파 온 것 같은 내 커리어 역시도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커피챗까지 찾아온 내담자들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경험 상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조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등을 도닥이고 안아주는 온기와 체온, 그것 뿐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의 나를 돌이켜본다. 인턴을 지원할 때, 정규직 제안을 받았을 때, 대학원 지원서를 쓸 때, 파견을 가야 하나 싶었을 때, 귀국 명령이 떨어졌을 때, 병가를 냈을 때,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할 때,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을 때, 팀장이 되었을 때, 다시 퇴사를 할 때. 어느 한 순간 편안한 마음으로 쉬운 결정을 했던 날은 한번도 없었다. 며칠이나 머리를 싸매고 잠을 설치며 마지막까지 이게 맞나 망설였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침잠하며 파헤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고, 오늘의 순간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모든 고민이 모인 결과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챗으로 마주한 분들께는 항상 나의 경험을 먼저 읊어주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말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읽어보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가요, 하고. 깊숙이 스스로를 파고 들어본다면, 이제껏 걸어온 길과 선택들이 결국 나침반이 되어, 나의 마음은 내가 가야할 길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 오늘 날, 다른 누구의 조언이나 답 보다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응원이 더 큰 힘이 된다. 이 척박한 업계에 우리가 커피챗이라는 서비스로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이유기도 하다.

[커피챗 후기의 일부]

[커피챗 후기의 일부]

어느 회사가 좋아요, 대학원은 이렇게 가세요, 그 포지션은 가지 마세요 같은 겉핥기식 대화가 아니라, 본질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다보면 다들 조금 후련해진 표정과 상기된 얼굴이 된다. 그렇게 커피챗을 마무리할 때쯤, 이런 질문들이 등장하곤 한다.

“공사모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커피챗을 무료로 하시는거에요?”

“바쁘실텐데 매번 이렇게 커피챗에 나오세요?”

“돈도 안받고 이런 상담을 받아도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