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주니어 에세이가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어, 주니어 에세이 2탄도 써보기로 결심했다. 어떤 주제를 써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서, 나의 주니어 시절과 4년차인 지금, 새로운 도전에 발을 내딛으며 다시 주니어가 된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대학원에만 들어가면 국개협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잃었고, 결국 도피성으로 무작정 내가 강점이 있어 보이는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썼다. 당시 나는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서포터즈 경험도 많아 "홍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당연히 나 말고 누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사진 : 과거에 열심히 살았고 일했던 나

사진 : 과거에 열심히 살았고 일했던 나

이런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곧바로 합격 소식을 들었고,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ODA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 시절부터 바래왔던 이 분야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다니, 마치 온 세상을 나 혼자 구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공사모 단톡방을 보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시절이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도 있다.) 회사에서 마주한 현실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자책도 하며 2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꼭 국개협이어야만 해? 국개협 말고도 밥벌이할 방법은 많을 텐데, 왜 국개협 외길 인생만 고집하는 거지?"

"근데 나는 국제 업무를 할 때 가장 재미있고 에너지를 얻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젠가 다시 ODA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반쯤 걸칠 수 있는 국제협력을 해보자!"

그렇게 나는 과학기술 국제협력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문과 출신인 나에게 모든 용어와 환경이 낯설었고, ODA와는 전혀 다른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해외 파트너와 협력하며 양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진 : ‘24년 공사모 네트워킹 파티(홍박이의 러버 공사모 멤버들)

사진 : ‘24년 공사모 네트워킹 파티(홍박이의 러버 공사모 멤버들)

국제협력 업무도 즐거웠지만, 공사모 활동 때문이었을까?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ODA를 해야겠다는 갈증을 느꼈다. 타 부서에서 ODA 관련 질문이 들어오면 신이 나서 대답 해주고, ODA 업계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2년 전, 국제협력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던 시점에서 몸도 마음도 온전하지 못한 채로 이 업계를 떠나고 싶었는데, 결국 나는 다시 ODA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ODA 업계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던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지원서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고민도 많았고, 주변의 걱정도 컸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선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무모하지만 도전적인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