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집 앞 식당에 어르신 열댓 분이 모여 이른 아침 백반을 드시고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였나 보다’ 싶었지만, 그 장면이 며칠째 반복되는 걸 보고 나서야 눈길이 꽂혔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하고는 해맑은 인사 후 흩어진다. 뭔가 이상했다. 왜 매일 아침에만? 직업이 새벽 조일까? 그런데 옷차림은 너무 단정하고 여유롭다. 종교 모임 같지도 않고, 우리 건물 주민도 아니다. 설명되지 않는 퍼즐 조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컨설턴트의 습성은 발동되었고, 나는 며칠간 ‘이들의 정체’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수정하고, 또 보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 공원 한켠에 걸린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드민턴 동아리 회원 모집>. ‘오… 혹시?’ 단서가 생기자 가설이 다시 업그레이드됐다. ‘아침 운동 → 식당으로 이동 → 뒷풀이 백반 타임!’ 며칠, 몇 주, 몇 달이 흘렀고 마침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한 어르신의 등 뒤에서 그걸 봤다. 배드민턴 라켓!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됐다!” 범인은, 아니… 정체는 바로 배드민턴 동아리였구나. 가설이 증명되는 그 짜릿함에 스스로 뿌듯해 웃음이 났다.

( 비밀조찬클럽의 정체를 밝혀냈다..! )

( 비밀조찬클럽의 정체를 밝혀냈다..! )

그렇다. 나는 컨설턴트고, 직업병이 있다. 그냥 지나치면 될 일에도 자꾸 분석하고 해석하고 논리적 연결성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냥 아침 모임이네, 하고 넘기면 될 일을 굳이 며칠씩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결정적인 증거를 기다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국제개발협력 컨설턴트로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렌즈가 완전히 정착됐다. 이름하여, 관찰 → 질문 → 분석 → 가설 검증. 이건 더 이상 업무 방식이 아니라 거의 사고의 습관이 되었다.

카페에 앉아 있다가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들려오면? 자동 반사처럼 귀가 쫑긋 서고, 누가 어떤 이해관계자인지 머릿속에서 맵핑이 시작된다. 식당에서 주문 시스템이 불편하면? 곧바로 동선 재구성과 UX 개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여행지에선 관광상품 운영 전략과 홍보 타겟이 눈에 밟히고,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 ‘다르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동 실행된다. 진짜 직업병이다. 하지만 이 직업병, 나는 꽤 마음에 든다.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에 질문을 던지게 해주니까.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피곤하지만—이 렌즈를 끼고 보는 세상은 꽤 재미있다.

흔히들 컨설턴트의 산출물은 ‘솔루션’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모든 컨설턴트가 최고의 솔루션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겠지만, 수년간 이 일을 하며 내가 체득한 전략은 따로 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솔루션의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똑똑해 보여야 하고, 발표 자료는 화려할수록 좋고, 분석 결과는 복잡할수록 있어 보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의 맥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해도, 상대방이 ‘내 상황을 잘 모르는구나’라고 느끼면 그건 그냥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 실적을 내기 위해, 내 이름만 빛내려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결국 내 일은 고객의 일을 고민하는 것이니, 나의 필승 전략은 “진심으로” 같이 고민하는 것,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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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로부터 처음 컨설팅을 요청 받았을 때를 떠올린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직원들이 많았는데, 현장을 가보지 않은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정작 내가 한 일은 단순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 대화하며, 때로는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것.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갔다. 내가 준 것은 사실 새로운 솔루션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가진 지식과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때로는 외부인의 시선, 예상 밖의 질문이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기도 하니까.

공감능력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훈련으로도 길러진다.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은 계속해서 키워나가야 하는 근육과 같다.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하나의 정답’이라는 건 없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같은 문제라도 맥락에 따라, 주체에 따라, 가장 적절한 해결책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