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할 때가 되니 질기게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오는 듯하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실무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그중 매주 라이브로 진행했던 정치시사 방송 출연은 가장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매주 수천, 수만의 시청자 앞에서 기후와 국제개발협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평범한 내게는 과분하고 특별한 일이었으니까.

기후와 국제개발협력 이슈는 압도적으로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지하는 정권이든 아니든 언제나 비판적 시각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진 자는 더 갖고, 못 가진 자는 끝없이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떠나, 누구나 자신이 선 자리가 곧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기 쉬운 법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 것을 직시하도록 도와야 한다특히 .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삶의 결을 비추고 알리는 일, 그래서 권력이 자기 합리화 속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정부는 ‘전 정권’이 되었다. 나는 이 정권을 집권 내내 비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민이 정의롭게 자원을 나누라며 맡긴 권력을 ‘스스로 많이 가지는 데 쓰고, 적게 나누려’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고, 힘들다고 곡소리를 내도 ‘어떻게 하면 적당히 착한 척하면서 내가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결국엔 '적당히 착한 척'조차 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게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은 매우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내가 잘하는 일도, 행복한 일도 아니다. 물론 비판의 대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잠깐 도파민이 돌긴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공동의 목표를 향하지만 방법이 다른 이들을 비판할 때는 덜 힘들다.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보다 따뜻한 동료애를 갖고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 살겠다'는 태도, 심지어 '차라리 다 같이 망하자'는 태도를 가진 이들을 상대할 때는 에너지가 몇 배로 소진된다. 물론 그만큼 위험한 상대라는 위기감에 결국 비판을 하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인 내게 이런 상대를 만나 마이너스에서 겨우 0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효능감이 그리 크지 않다.의미는 있지만, 너무 벅차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다.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내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내게 다시 묻는 것이다. 스스로 많이 가지고, 적게 나누려 한 권력으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을 다잡기 위해 나는 삶의 기준을 다시 업데이트해야 한다.

몇 해 전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덥혔던 ‘어른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요즘 닥치는 대로 찾아보고 있다. 당시에 미처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문형배 재판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그분이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 맞다, 하며 뭔가에 홀린 듯이 김장하 선생의 삶을 탐닉하고 있다.

그분의 이야기에 빠져든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집착 없이 남에게 베푸는 삶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게 갖고 많이 나누는 삶이자,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고 남을 위해 조용히 존재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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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갈등과 착취의 고리는 더 촘촘해지고, 남의 아픔을 발판 삼아 성공을 포장하는 일이 너무도 익숙하다. 불평등이 구조가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그 현실을 외면한다. 아니, 외면하는 것이 더 쉬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국제개발협력도 다르지 않다. 원조라는 이름으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선의를 포장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높낮이가 생긴다. 우리가 더 가진 사람들로서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관계는 비틀어져 있다. 도움을 준다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만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애초에 줄 것과 받을 것의 구분이 없는 평범한 삶의 풍경을 만들어 가는 것.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고 상대의 존엄을 소비하지 않으며 서로가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제개발협력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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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란다. 다가오는 봄은 더 정의롭고, 더 따뜻하기를.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이 내놓고, 가지지 못한 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기를.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더 이상 굴욕이 되지 않고,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우월함이 되지 않는 사회이기를. 남의 불행을 전시하고, 마치 내 삶이 고결한 듯 포장하지 않길. 불평등이 구조가 아니라 예외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길, 그래서 나 역시 부끄럽지 않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